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이 다음 달 5일로 종료된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마지막 남은 핵 군축 레짐이 사라지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파에 더해 양대 핵 강대국 간 전략적 안정성마저 흔들림에 따라 국제 안보 환경은 한층 더 불안해졌다.
2010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핵 군비축소 조약인 뉴스타트에 따르면 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그리고 전략폭격기의 최대 보유량은 각각 700기이다. 그리고 이들 운반 수단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도 1550개를 넘지 못한다. 또한 뉴스타트는 상호 현장 사찰을 의무화하고 핵무기의 이동과 변동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러·우 전쟁으로 인한 미·러 관계 악화는 뉴스타트에도 타격을 가했다. 2023년 2월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한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에 적대적인 행위를 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새로운 유형의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러시아의 안보 이익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6월1일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에 관한 주요 정보를 러시아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현장 사찰은 물론 상호 정보 공유도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뉴스타트의 이행 여부 확인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유명무실하게 된 뉴스타트의 만료일이 가까워짐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1월 러시아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핵무기 감축 조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미국이 호응한다면 뉴스타트 만료 이후에도 핵심 제한 사항을 1년 더 준수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 측은 검증 없는 뉴스타트 효력 연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장 사찰 없이 연장 제안을 수용하는 것은 스스로 손발을 묶는 행위라는 것이다. 오히려 상당수 미국 당국자와 전문가는 새로운 핵 감축 협상의 개시 여부와 상관없이 핵전력 증강과 현대화를 주문하고 있다.
향후 뉴스타트를 대체할 새로운 핵 군축 레짐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미·러 간 상호 불신과 갈등의 골이 깊다. 러시아는 트럼프 행정부의 골든 돔(우주요격미사일방어체계) 구축 계획이 전략적 균형을 깨트리는 행위라고 본다. 반면에 미국은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탑재 장거리 순항 미사일 킨잘, 신형 ICBM 루베시, 그리고 중거리탄도미사일 오레시니크 등의 개발이 양국 간 핵균형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미국 조야에서는 자국과 대등한 핵 강대국인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핵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편, 중국 변수도 새로운 핵 군축 레짐 구축의 복병이다. 워싱턴은 뉴스타트의 참여국이 아닌 베이징이 자유롭게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미국은 새로운 핵 군축 협상에 중국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미국의 핵 능력에 크게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이 그러한 미국의 주장에 동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러시아는 중국의 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반면에 모스크바는 새로운 군축 협상에 영국과 프랑스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이렇듯 뉴스타트 종료 이후 새로운 핵 군축 레짐이 구축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오히려 미·러 양대 핵 강대국뿐만 아니라 중국, 영국, 프랑스 등 공식 핵보유국 그리고 비공식 핵보유국 간 핵 군비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국제 안보의 불안정성 증대는 한반도의 안보 위협과 긴장 고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북한의 핵전력 강화는 한반도의 안보 지형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북한은 수년 내 실전 배치가 가능할 정도로 SLBM 탑재 핵추진 잠수함 건조의 완성도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환경의 대전환기를 맞아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기존의 확장억제에만 머물지 않고 플랜B를 포함한 다층적 안보 역량 제고와 국익 우선의 정교한 외교 전략 수립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