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20조원으로 잠정집계됐다고 어제 공시했다. 종전 최대인 2018년 3분기 실적(17조5700억원)을 29분기 만에 경신했다. 매출도 역대 분기 매출 최대인 93조원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인프라의 확산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의 수요 급증, 범용 D램의 가격 상승 등이 ‘전인미답’의 실적을 견인했다.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20조원 시대를 열면서 올해 연간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또다시 정부와 국회가 더딘 지원과 입법으로 반도체 슈퍼 사이클 호기를 놓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삼성의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서 16조∼17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스마트폰·가전 등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실적 부진을 상쇄한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분기 15조∼16조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메모리 분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고 경쟁력과 지배력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AI 시장 성장에 따른 서버 수요 폭발, 글로벌 데이터센터 교체 요인에 기반해 2027∼2028년까지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호재다.
반도체 패권전쟁 속에서 우리 정부와 국회를 보면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은 ‘칩스법’을 통해 5년간 390억달러(57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중이다. 일본·유럽도 반도체를 안보·산업 전략의 핵심축으로 올려놓았다. 중국은 더 위협적이다. 반도체 생태계 육성을 위해 3400억위안(약 70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AI 칩 등 반도체 설계는 이미 우리를 앞섰다는 평가다. 메모리 중에서도 D램과 낸드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우리에게 HBM이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정도다.
반도체 산업은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벅차다. 천문학적인 연구개발(R&D)·시설투자나 인재 육성에 정부와 국회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주 52시간제 예외’가 빠진 반쪽짜리 ‘반도체특별법’마저 1년 반 넘게 표류하고 있다. 정부 지원도 보조금을 쏟아붓는 경쟁국과 달리 세제 혜택의 간접 지원 수준이다. 선거를 앞두고 국가 프로젝트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론’ 같은 정략까지 판을 친다. 메모리 슈퍼 사이클과 AI 반도체 국면을 맞은 지금이 투자와 기술 고도화를 동시에 추진할 골든타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