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1월 4일, 이란 혁명 이후 반미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시위대에 의해 점거당했다. 미국인 50여명이 인질로 억류됐다. 외교적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던 미국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결국 군사적 해결책을 선택하게 된다. 델타 포스를 중심으로 극비리에 인질 구출 작전이 감행됐다. 그 유명한 ‘독수리 발톱 작전’(Operation Eagle Claw)이다. 카터의 바람과는 달리 작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미국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반면 이란의 신정(神政)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신정체제는 종교지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제도를 말한다. 북한의 수령체제와 함께 가장 강력한 독재체제 가운데 하나다. 이란의 경우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통해 이뤄졌다. 당시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를 붕괴시킨 뒤 이슬람 헌법을 제정했다. 이로써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는 국가 최고지도자(라흐바르) 겸 군 통수권자로서 국정 전반을 장악하게 됐다. 종신 임기에 정부 수반인 대통령 인준 및 해임권도 가진다. 그야말로 무소불위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휩쓴 ‘중동의 봄’은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 사건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맞서 “존엄과 자유”를 외쳤다.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집트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이 들어섰다. 무르시 정부는 이슬람주의 색채가 강한 헌법을 통과시키며 신정체제를 수립하려다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란에서는 2022년 22세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당시 시위는 이란 신정체제의 정당성을 뒤흔든 중대 도전이었다. 최근 고물가 등 경제난이 촉발한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군사 개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정체제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사태를 바라보는 동맹국 북한의 심경이 편치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