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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평양~베이징, 평화는 길에서 시작된다 [종교칼럼]

입력 : 2026-01-13 16:17:11
수정 : 2026-01-13 16: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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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은 일주일 전의 일이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서울~평양~베이징을 잇는 고속철을 만들자”는 구상을 제의했고, 시 주석이 이를 “좋은 제안”이라고 평가했다고 13일 단독 보도했다. 단순한 외교 수사로 치부하기에는 이 제안이 담고 있는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는 남북 관계, 한중 협력, 나아가 동북아 질서 전반을 다시 설계하려는 장기적 구상으로 읽힌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서울~평양~베이징 고속철 건설을 비롯해 원산갈마 평화관광, 대북 보건의료 협력, 광역두만개발계획(GTI) 등 네 가지 남북·국제 협력사업을 함께 제시했다. 이 구상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제재와 압박’이 아닌 ‘연결과 협력’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출구를 찾겠다는 접근이다. 특히 고속철 구상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남북 단절의 상징이었던 군사분계선을 일상의 통로로 전환시키는 정치적·문명사적 상상력을 담고 있다.

 

서울과 평양, 베이징을 잇는 철도는 한반도를 고립된 섬이 아니라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차점으로 복원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미 2018년 12월,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은 개성 판문점역에서 한반도종단철도(TKR)와 동해선·경의선 연결 착공식을 공동으로 치른 바 있다. 비록 이후 정세 악화로 실질적 진전은 멈췄지만, 그 경험은 남북 철도 연결이 결코 공상적 구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철도연구원과 한국철도공사 등에는 이미 남북 고속철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 연구가 축적돼 있을 것이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제안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이를 한중 협력의 의제로 공식화했다는 점에 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이며, 동시에 한반도 안정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과 직결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시 주석이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좋은 제안”이라고 평가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신호다. 고속철이라는 구체적 글로벌 인프라는 정치적 수사보다 설득력이 강하다. 길이 놓이면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그 과정에서 긴장과 적대의 밀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 구상은 러시아, 시베리아, 유럽으로 확장될 잠재력을 지닌다. 서울~평양~베이징 고속철은 곧 유라시아 철도망과 연결될 수 있는 관문이다. 한반도가 분단의 끝이 아니라 대륙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는 순간, 통일은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구조적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이 대통령의 제안은 바로 그 ‘구조’를 다시 상상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40여 년 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1981년 문선명 총재는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세계 109개국, 857명의 석학들 앞에서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했다. 그의 문제의식 역시 분명했다. “인류는 한 가족”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끊어진 구간을 물리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 총재가 제시한 1차 목표는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였다.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를 종단해 터널이나 교량으로 일본 열도에 연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나아가 이를 전 세계로 확장하는 구상이었다.

 

문 총재에게 이 고속도로는 단순한 토목 사업이 아니었다. ‘초고속화’로 세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고, 단절과 대결의 질서를 왕래와 협력의 질서로 전환시키려는 문명사적 기획이었다. 훗날 세계피스로드재단이 이 구상을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고속도로보다 고속철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에 이르렀고, 그 연장선에서 고속도로 역시 확장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바 있다. 오늘날 이재명 대통령의 고속철 구상은 결과적으로 문 총재의 문제의식이 기술과 현실의 언어로 다시 번역된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총재가 한일터널과 베링해협 연결까지 염두에 두었던 이유 역시 같다. 단절은 갈등을 낳고, 연결은 화합과 공동번영의 토대를 만든다는 확신이다. 그는 통일을 구조의 문제로 보았다.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을 잇는 축으로 자리 잡을 때, 분단의 관성은 약해지고 통일의 현실성은 높아진다는 인식이었다. 시대도, 언어도, 형식도 다르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문선명 총재의 시선은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길을 내고, 잇고, 오가게 하자는 것이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로 다가와야 한다. 서울~평양~베이징 고속철 구상이 단지 하나의 제안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와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실질적 논의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