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을 한 20대 남성 최모씨가 법정 피고인 자리에 홀로 섰다. 변호인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여느 최후변론과는 달랐다. 지난해 9월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407호 법정이었다.
최씨는 서부지법 난동 사태에 가담해 건조물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변호사는 사임했다. 사정을 묻는 판사에게 “유치장에 있을 때 저절로 지정됐는데 연락도 안 됐다”며 “최근에야 사임서를 낸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최씨는 재판을 미루지 않고 혼자 최후변론까지 마쳤다.
또 다른 피고인 30대 이모씨 가족은 “(변호사가) 저번에 몇 번 출석을 안 했다”며 “이제 변호 안 해준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변호사에게 진행상황을 알려 달라고 재촉했더니 삐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가 재판 일정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세 번이나 헛걸음했다”며 “진행상황을 알고 싶어 연락해도 받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최씨와 이씨 변호인은 모두 ‘서울서부자유변호사협회’(협회) 소속으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5월 공개한 ‘창단 성명문’을 통해 서부지법 난동 사태에 가담해 재판받고 있는 ‘서부항쟁자유청년들’을 변호사로서 조력하기 위해 창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성명문에서 그해 1월 서울서부지법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불법적으로 영장재판권을 휘둘렀다’고 규정했다.
지난달 12일 기준으로 첫 공판기일이 이뤄진 서부지법 사태 피고인 120명의 변호인과 공소사실 인정 여부, 형량과 반성문 제출 횟수 등 재판 관련 정보를 13일 분석했다. 피고인 67.5%(81명)를 협회 소속 변호사가 맡고 있었다. 이들이 지난해 공개한 소속 변호사 명단을 기준으로 했다. 법조계에선 재판 과정에서 협회 소속 변호사 측 대응 방식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협회가 맡은 피고인의 상대적으로 낮은 공소사실 인정률이 이런 문제 제기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증거가 많은 서부지법 사태의 경우 공소사실 인정 여부가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협회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 경우 공소사실을 일부라도 부정하는 비율은 65.8%였다. 국선이나 다른 사선 변호사가 맡은 경우(18.2%)의 3.6배 수준이었다. 다만 해당 사건들이 동일한 사실관계나 혐의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어서, 변론 방식과 재판 결과의 상관관계는 개별 사건별로 신중히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협회는 지난해 5월 국민의힘 ‘ICT방송미디어정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던 A 변호사 등 11명의 변호사가 소속돼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창립총회에 연사로 참석했다. 소속 변호사 3명은 최근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재판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 부적절한 언행과 의도적 재판 지연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퇴정 명령과 감치 15일을 선고받았고,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재판장을 비난해 법원이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요청했다. 검찰은 5일 변협에 징계 개시를 신청했다.
◆집유 7.2%P 낮고, 구형 대비 선고 8.8%P 높아
재판에선 공소사실 인정 여부가 양형에 주요한 요소였다. 유튜브 생중계나 경찰 채증 영상 등 현장 상황이 담긴 증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 사건을 맡은 서부지법 형사6단독 김진성 판사는 재판이 갖는 의미에 비춰 봤을 때 ‘죄를 인정하는지’, ‘반성하고 있는지’가 양형을 결정할 때 특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피고인은 영상이 객관적 증거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다투기도 했다.
대법원은 2001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나 행위가 피고인에게 보장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경우에는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참작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수건조물침입과 특수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 남모(36)씨는 협회 소속 변호사의 조언을 참고해 변론 방향을 정했는데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황 전 국무총리도 변호인으로 이름 올렸다. 남씨는 “잘못을 부인했던 건 아니다”며 “처음부터 반성문도 꾸준히 적고 2심까지 총 1000만원을 공탁해 피해를 조금이라도 변제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또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건 변호사들과 상의하에 이뤄졌다”며 “‘특수건조물침입’은 과거 민주노총 시위에서 지도부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하던 죄명이라 다퉈볼 만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남씨는 1심에서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더 중한 형량을 받았다는 것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협회 변호사가 맡은 사건 징역형 집행유예 비율은 31.5%로, 그렇지 않은 경우(38.7%)보다 7.2%포인트 낮았다. 검찰의 구형 대비 선고 형량 비율 평균도 81.2%로 국선이나 다른 사선 변호사가 맡은 경우(72.4%)보다 8.8%포인트 높았다. 다만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가 각기 달라 단적으로 판단할 순 없다.
◆변호사 바꾼 피고인들
일부는 제대로 된 변호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구속 피고인 박모(36)씨는 원심에서 협회 변호사를 선임했다. 박씨는 “접견도 다른 사람 밀려 있다고 짧은 시간만 했다”며 “심지어 재판 날짜 다 돼선 의견서 한 장 받아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통이 안 되는데 결과가 잘 나올 리 없었다”며 “딱 단체에서 지원해 주는 최소한의 사건 처리 그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1심에서 특수건조물침입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1년4개월을 선고받았다. 박씨는 2심에서 변호인을 바꿨다. 원심과 달리 일부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는 무죄를 받아 징역 4개월 감형됐다.
이견을 좁히지 못해 황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협회 변호사가 사임하는 일도 있었다.
특수건조물침입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는 권모(28)씨를 변호했던 오승환 변호사는 “기록을 검토했을 때 자백하고 반성하는 취지로 가는 게 법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했다”며 “부인 취지로 맡고 계신 변호사님들은 함께할 수 없다고 피고인에게 말했다”고 했다.
서부지법 한 국선 변호인은 “변호사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고 피고인들 의견도 무시할 수 없어서 감히 평가할 순 없을 것 같다”면서도 “객관적 증거들에 대해선 증거 능력을 인정하고, 개별 피고인의 구체적인 행위를 특정해 그 행위의 정도나 의미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공동 선임된 변호사 사이에서 변론 방향을 둘러싼 의견 차이가 드러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0월31일 특수건조물침입과 특수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된 유튜버 이모(29)씨 항소심 재판에서 협회 변호사가 법리오해를 주장하자 협회 소속이 아닌 정모 변호사가 제지했다. 정 변호사는 “피고인은 전부 인정하고 싶어했는데 재판정에서 촌극이 벌어졌다”며 “(협회 변호사가) 제출한 의견서는 피고인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료로 변론하는 건 좋은데 피고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덧붙였다.
◆법정선 ‘부인’하면서 반성문 제출
피고인을 위한 변호를 펼치기보단 본인 인지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도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한 피고인도 다수 있었다. 변호인과 피고인 사이의 소통이 충분했는지를 두고 문제 제기도 나온다. 협회 소속 변호인이 맡은 피고인 가운데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반성문을 제출한 사람은 3명 중 1명꼴(29.2%)이었다. 국선·다른 사선 변호인이 맡은 피고인(16.4%)의 두 배였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이 두려운 피고인은 변호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본인은 혐의를 인정하더라도 변호사가 부인하라고 하면 변호사를 믿고 부인하게 되는 것”이라며 “판사는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반성 안 하는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집행유예를 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 이언학 변호사도 “피고인을 이용해 자기 정치,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너무 나쁜 사람으로 생각된다”며 “(이런 변호사는) 변호사가 아니다. 나중에 피고인이 그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가 뒤늦게 변론 전략을 바꾼 것을 판사가 꾸짖기도 했다.
특수건조물침입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옥모(23)씨는 원심에서 증거를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가 5회 공판기일이 돼서야 일부 동의했다. 항소심 재판장은 증거조사 절차와 관련해 의견이 있는지 물었는데, 변호를 맡은 A 변호사는 “피고인은 처음부터 반성하고 검사를 힘들지 않게 해드리고 싶단 의견이었다. 변호인이 설득해서 복잡하게 나아간 측면이 있다”며 “이후 협의를 거쳐서 증거 동의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장은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누가 부담해야 할까”라고 질책했다.
본보는 협회 주요 보직을 맡은 A 변호사에게 서면질의서로 입장을 구했으나 구체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A 변호사는 이날 통화에서 질의서 내용에 대해 “차별적 잣대”라며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협회는 사태 이후 1년을 맞는 19일 서울 서초구 흰물결아트센터 화이트홀에서 ‘후원의 밤’을 연다.
지금도 변호사회원과 후원회원, 특별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회원이 되려면 ‘반국가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목적에 동의하고 회비를 납부해야 한다. 달마다 변호사는 5만원, 후원회원 1만원, 특별회원 3만원이다. 학생의 경우 1만원만 내도 특별회원이 될 수 있다.
취재=윤준호·이예림·소진영 기자
사진=남정탁·최상수 기자
편집=서혜진·도진희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기현·손성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