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3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초청으로 나라현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을 일본 특유의 환대 문화인 ‘오모테나시’로 환영했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환담 자리에서 함께 드럼 합주를 선보이는 등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날 다카이치 총리가 현지 숙소 앞에서 이 대통령을 직접 영접하며 극진히 환영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이처럼 밝히며 “이는 당초 예정돼 있던 호텔 측 영접에서 총리 영접으로 격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장에서도 태극기를 향해 깍듯이 예를 표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에 앞서 이 대통령과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한 후 이 대통령을 자리로 안내하고 뒤로 돌아 태극기에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일장기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향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앞서 정상회담 하루 전인 12일 나라현에 먼저 도착해 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준비했다. 일본 현지 언론 등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른바 ‘오모테나시 외교’를 위해 공을 들였다는 평가를 내놨다.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먼저 개최지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라는 평가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만찬 메뉴 선정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 전 진행된 정상 간 환담에서 일본 측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은 깜짝 이벤트로 드럼 합주를 마련했다. 김남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양 정상은 일본 측이 마련한 푸른색 유니폼을 함께 착용하고 일본의 대표적 악기 브랜드인 ‘펄’ 드럼 앞에 나란히 앉아 즉석 드럼 합주를 선보였다”며 “이번 이벤트는 양 정상 간의 호흡과 친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일본 측이 특별히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양 정상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과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함께 연주하며 환담을 특별한 문화 교류의 장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즉석에서 드럼 연주 방법을 직접 설명해줬고 이 대통령은 합주 후 “오늘 평생의 로망을 이뤘다. 어릴 적부터 드럼을 치는 것이 소원이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정상 간 만남은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이자 10선을 한 지역구인 나라에서 열려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상대국, 특히 한국 정상과 개인적·정치적 의미가 깊은 장소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신뢰와 환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일본 총리가 양자 외교를 위해 타국 정상을 자신의 ‘안방’에서 맞이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역대 일본 총리를 따져 봐도 자신의 고향에서 양자 정상회담을 한 사례는 2016년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야마구치현으로 초대해 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문제 등을 논의한 정도가 전부다.
다자 외교로 범위를 넓히면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2023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최지로 자신의 지역구이자 세계 최초의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택해 각국 정상들에게 원자폭탄에 의한 참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사례가 있다.
이번 ‘고향 셔틀외교’는 과거 상대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두 사람이 정상 자리에 오른 뒤에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 손을 맞잡으며 관계 개선과 신뢰 관계 구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NHK 방송에 “도쿄 이외의 지방, 특히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으로 초대해 허물없는 분위기에서 의견 교환을 하고, 개인적인 신뢰 관계를 공고히 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변방 사또’라고 칭하곤 했던 이 대통령, 남성 세습 정치인 중심의 일본 정치권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른 다카이치 총리가 자수성가한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을 내세우기에도 적합한 장소다. 이 대통령은 전날 NHK 인터뷰에서 “혹시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다카이치 총리를) 제 고향 안동으로 한번 초청하고 싶다”면서 고향 셔틀외교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나라시청은 ‘환영 이재명 대통령 나라시 방문, 경주시·자매도시 나라시’라는 문구가 한글로 크게 적힌 가로 16m, 세로 1.4m 크기 현수막을 청사에 내걸고 이 대통령의 방일을 반겼다. 나라현청도 청사 정면과 인근 문화회관에 양국 언어로 ‘환영 한·일 정상회담’이라고 쓴 현수막을 설치하고, 전광판 등을 활용해 두 정상의 만남 소식을 알렸다.
이 대통령이 나라를 찾는 모습을 보기 위해 회담장 주변에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나라현경은 전국 각지 경찰관을 파견받아 수천명 규모의 경비본부를 구성하고 현경 본부장이 직접 엄중 경계태세를 지휘했다. 회담장 주변에서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과 경비견이 폭발물 탐지를 했고, 버스정류장 무정차 통과 등을 통해 안전을 확보했다. 헬기를 이용한 공중 경비 작전도 펼쳐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과 정상 간 환담, 만찬에 이어 14일에도 다카이치 총리와 정상 간 친교행사를 함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