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빼빼로가 무너뜨린 ‘남북’의 담… “다를 줄 알았는데, 그냥 친구였어요”

입력 : 2026-01-13 19:45:48
수정 : 2026-01-13 23:03:16
폰트 크게 폰트 작게
탈북·일반 고교생들 첫 만남 현장

3년 전 강서로 이사온 여명학교
세현고 학생이 건넨 선물로 인연
MIT 과학캠프 열고 한자리 모여
실험하다 웃음꽃… 편견 사라져

두 학교를 가르던 담장을 처음 넘은 건 ‘빼빼로’ 과자였다. 탈북민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가 서울 은평구 이전 계획 무마로 강서구로 이사를 와 일반고등학교인 세현고 이웃이 된 건 2023년 8월. “주민들 반대 때문에 쫓겨날까 봐 이삿짐도 못 풀고 숨죽여 있던” 여명학교의 아이들에게 세현고 학생들이 담 너머로 과자를 건넸다고 한다. ‘빼빼로데이’(11월11일)였다.

 

“애들이 빼빼로를 들고 와선 자랑을 했어요. 빼빼로데이가 뭐냐, 왜 이런 걸 주냐 묻는데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했어요.”

서울 강서구 탈북민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서 12일 시작된 과학캠프에서 여명학교 학생, 일반고등학교 세현고 학생들이 자기소개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남정탁 기자

여명학교 조명숙 교장은 그때 세현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캠프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2일 시작해 23일까지 2주간 여명학교에서 열리는 과학캠프가 그 결실이다. 게임회사 NC가 운영하는 NC문화재단 후원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한국인 유학생 등이 여명학교에 와서 과학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고 학생들이 함께했다.

 

세현고 학생 3명, 여명학교 학생 20명이 자기소개를 하며 12일 캠프가 시작됐다. 문재원양(세현고)이 가장 먼저 일어서자 “예쁘다”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진 ‘아이스브레이킹’은 어색함을 떨치려 만든 시간이다. 10대 특유의 발랄함으로 행사장은 금방 부산스러워졌다. 여명학교 학생들이 세현고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너 혹시 초록색이 제일 좋아?” “MBTI가 뭐야?” 등 질문을 쏟아냈다. 실험이 시작되고는 사뭇 진지해졌다. 자갈, 모래, 빨대, 휴지 등 재료를 비교하면서 어떤 지형의 도시를 만들면 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재료는 모래 2개, 스펀지 2개로 하자.”, “모래를 깔고 그 위에 휴지를 덮는 건 어때?”,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사이사이에 웃음이 더해지며 아이들은 더 가까워졌다.

 

세현고 학생들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만 바라보며 자신과 다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여명학교 학생들을 친구라고 불렀다.

 

이다은양은 “생김새부터 다르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똑같아서 편견이 사라졌다”고 했다. 조선우군은 “북한에서 왔다고 해 다를 줄 알았는데 여기서 보니까 그냥 친구”라며 웃었다. 

서울 강서구 탈북민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서 12일 시작된 과학캠프에서 여명학교 학생, 일반고등학교 세현고 학생들이 과학실험 결과를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여명학교 학생들은 한국 사회가 자신들을 받아주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듯했다. 김민정양은 “어딜 가도 ‘내가 탈북민이라서 싫어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많이 했다”며 “세현고 친구랑 처음 같이 앉았는데 진짜 짜릿했다. 마음의 벽이 확 허물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강하은양은 “세현고 계단에서 우리 운동장이 보이는데 우리한테 손을 흔들고 그랬다. 늘 친해지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여서 제일 좋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탈북민을 바라보는 일부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교류를 망설이기도 했다던 두 학교 관계자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학생들의 모습에 흡족해했다. 세현고 하의진 교장은 “학생들이 직접 섞여서 활동하는 건 이번 캠프가 처음”이라며 “내년 축제 때는 여명학교 친구들이 장기자랑 코너 하나 정도는 함께할 수 있게 하자는 얘기도 여명학교 교장 선생님과 해뒀다”고 전했다. 생활혁신부장 오수찬 교사는 “이번 캠프가 사회에 탈북민과의 교류 상징성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여명학교 조 교장은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학교 문을 잘 열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며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분단이라는 상황이 만든 (탈북민의) 어려움은 우리 공동체가 같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세현고 친구들과의 만남이 뿌듯했던지 여명학교 하은양은 기자에게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큰 희망을 이야기했다. 

 

“전 통일이 꼭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별의 아픔이 있으니까요. 외할머니랑 이모는 북한에 계시거든요.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연락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