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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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인종 차별 불복종’ 앞장선 美 흑인 인권운동가 별세

입력 : 2026-01-14 09:36:12
수정 : 2026-01-14 09: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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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데트 콜빈, 86세 일기로 자연사
1955년 백인 자리에 앉아 이동 거부
로자 파크스보다 9개월 앞선 불복종

미국 남부에서 흑백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1950년대 중반 버스를 타고 가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1913∼2005)가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처벌을 받은 사건은 흑인 인권 신장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처음에는 흑인들의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시작했다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이 개입하며 대규모 흑인 인권 운동으로 확산했다. 그런데 파크스 이전에도 버스 내 인종 차별 규정에 불복종으로 맞선 흑인 여성이 있었다. 이른바 ‘오리지널(원조) 로자 파크스’로 불리는 클로데트 콜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3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클로데트 콜빈 레거시(유산) 재단’은 이날 콜빈이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고인은 텍사스주(州)에서 생애 말년을 보냈으며, 사인은 자연사라고 한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클로데트 콜빈(1939∼2026). 1955년 미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2005년 별세)보다 먼저 버스 내 흑백 인종 차별에 불복종으로 맞선 인물이다. AP연합뉴스

콜빈은 1939년 미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태어났다. 1955년 3월2일 당시 15세 고교생이던 콜빈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귀가를 위해 버스에 탔다. 주 법률에 따라 버스는 백인 좌석과 흑인 좌석으로 나뉘어 있었다. 백인 좌석이 꽉 차는 경우에는 흑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 있는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만 했다.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콜빈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비어 있던 백인 좌석에 앉았다. “당장 일어나 자리를 옮기라”는 버스 기사의 호통에도 콜빈은 “나는 요금을 냈고 빈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몸싸움 끝에 콜빈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어린 여학생인 콜빈이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되자 흑인들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로부터 9개월 뒤인 1955년 12월1일 이번에는 42세의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 안에서 콜빈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가 역시 기소돼 벌금형에 처해졌다. 파크스 또한 NAACP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운동가였다.

1955년 클로데트 콜빈, 로자 파크스 등에 의해 촉발된 이른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 당시의 모습. 몽고메리의 흑인 주민들이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SNS 캡처

파크스의 체포를 계기로 마침내 지역 사회의 흑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몽고메리에선 버스를 타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당시 26세의 젊은이였던 킹 목사가 보이콧 운동의 선두에 섰다. 해당 사건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관들이 “버스 내 인종 차별은 위헌”이란 판결을 내리며 파크스와 흑인들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흑인 인권운동가로서 킹 목사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들어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의 법적 차별이 완전히 종식되는 시발점으로 작용했다.

 

킹 목사와 더불어 흑인 인권운동의 영웅으로 떠오른 파크스와 달리 콜빈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훗날 그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내 생각은 온통 자유에 관한 것뿐이었다”며 “그날 나를 좌석에 꼭 달라붙게 만든 힘은 역사(history) 그 자체”라고 회상했다. ‘클로데트 콜빈 레거시 재단’ 관계자는 콜빈이 파크스만큼 유명하지 않은 데 대해 “그분의 용기는 우리들 사이에서 너무 자주 간과되어 왔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