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세계타워] 견제와 균형이라는 이름의 공백

입력 : 2026-01-14 22:49:04
수정 : 2026-01-14 22:49:04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정교한 로드맵 없이 속도전… 부담은 언제나 국민 몫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보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을 두 명으로 늘리면 된다. 문제는 자원의 총량이 한정된 현실에서 인력이나 예산을 두 배로 확대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민변 회장을 지낸 김선수 전 대법관이 지난달 대법원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대법관 증원과 하급심 강화는 배치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추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건 처리 지연이 심각한 하급심부터 강화하는 게 대법관 증원보다 급선무라는 다른 전직 대법관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객석의 한 대학생이 손을 들었다. “공적 자원이 100일 때 둘 중 투자 비율은 어떻게 배분할 것이며,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현실 세계가 그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김 전 대법관은 “계량적으로 분석한 건 아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상고사건 수가 의미 있게 감소하면 그때 가서 대법관 수를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장혜진 사회부 차장

기관이나 제도를 새로 만드는 건 간단치 않다. 다시 돌리는 건 더 힘들다.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내세운 검찰개혁 논의도 그렇다. 문재인정부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이란 명목으로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했다. 제도 개편을 감당할 수사 인력과 전문성을 확충하기 전에 일단 질러놓고 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때를 기점으로 경찰 입건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이 2020년 59.7일에서 2024년 63.9일로 늘었다. 검찰의 보완·재수사 요청은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사건은 불어나는데 사람이나 지원책은 그만큼 따라주지 않다 보니 경찰 내 수사부서 기피 현상마저 생겼다.

검찰도 다르지 않다. 3대 특검 파견으로 수사 인력이 빠지면서 3개월 이상 장기 미제 사건이 2024년 1만8198건에서 지난해 3만7421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수사 기관을 여러 군데로 쪼개고 수사권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는 구조를 만들수록 권력형 사건은 숨어들기 쉽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내란죄 수사권 문제를 파고들어 구속취소 결정을 이끌어냈다.

피해자 없는 뇌물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리고 사건을 조용히 덮어도 이의 신청할 고소인이 없다. 동작경찰서는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측이 불법 선거 자금을 받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확보하고도 서울경찰청에 보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금품수수 혐의를 받는 전재수 의원을 압수수색 나흘 만에 불러 조사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그 사이 전 의원은 차기 부산시장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다. 한 변호사는 “핵심 피의자는 증거 확정과 관련자 조사를 끝내고 마지막 신병 처리 때 부르는 게 공식”이라며 “경찰은 초동수사는 뛰어나지만 뒷마무리가 약하다. 수사라는 것도 사법작용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상과 현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백 없는 수사’라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수사·기소 분리를 택한 영국은 1986년 왕립검찰청(CPS)을 만들고도 경찰의 기소권을 바로 전면 박탈하지 않았다. 대신 2003년 형사사법법을 제정해 대부분 사건의 소추 권한을 CPS로 옮기는 방식으로, 권한을 단계적으로 이관했다. 정교한 로드맵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우리와 딴판이다.

균형은 권한을 나누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검증 없는 개혁은 구멍을 남긴다. 현실에 대한 치밀한 계산 없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가혹한 청구서는 언제나 가장 낮은 곳의 국민에게 먼저 날아든다.

이슈 나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