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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완벽해질수록 우리는 ‘결함’을 사랑한다”... 기술과 공존 택한 디자이너들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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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완벽보다 '의도된 불완전성' 선호
기술이 발달할수록 빛나는 사람의 온기

인공지능(AI)이 창작의 영역을 침범한 초기, 디자인 업계는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정교한 일러스트와 시안을 단 몇 초 만에 생성하는 기술력 앞에 “디자이너의 시대는 끝났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분위기는 불과 몇 년 만에 반전됐다. 창작자들은 AI를 배척하기보다 영리한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불완전성’과 ‘진정성’이라는 가치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AI는 대체재 아닌 동반자”

 

글로벌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캔바(Canva)가 발표한 ‘2026 디자인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창작자들은 이제 AI를 위협이 아닌 협력자로 정의하고 있다. 조사 대상자의 77%가 AI를 “필수적인 파트너”로 꼽으며 이미 업무 흐름의 핵심에 AI를 배치했다고 답했다.

 

이는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과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이 정점으로 치달을수록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고유한 색채를 지키려는 열망이 더욱 강해져서다. 실제 응답자의 80%는 올해를 “창의적 주도권(Creative control)을 되찾는 원년”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AI가 제공하는 효율성은 취하되, 최종적인 미학적 결정과 개성의 투영은 인간의 영역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매끄러운 완벽함은 지루하다”

 

AI가 뽑아내는 매끄러운 이미지에 대한 피로감은 역설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인간의 흔적’에 러브콜을 보냈다. 캔바는 올해를 관통할 핵심 테마로 ‘의도된 불완전성(Imperfect by Design)’을 선정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획일적인 세련미에 지친 대중은 시각적 진정성에 반응하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DIY나 콜라주처럼 제작자의 손길이 느껴지는 디자인 요소의 검색량은 전년 대비 90% 급증했다. 특히 아날로그적 감성을 극대화한 ‘로파이(Lo-fi) 미학’ 관련 검색은 527%라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기술적 완벽함보다 정서적 울림과 향수를 자극하는 비주얼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속 인간미의 귀환

 

AI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이제 매끈한 디지털 표면을 거부하고 거친 질감과 의도된 어설픔을 선택하고 있다. 캔바는 이러한 흐름을 ‘무질서 시크(Notes App Chic)’와 ‘텍스처 체크(Texture Check)’ 등의 트렌드로 집약했다. 스크랩북 스타일의 자유분방한 구성이나 유리, 왁스처럼 촉각적 경험을 자극하는 현실적 질감이 각광받는 이유는 그것이 ‘살아있는 인간의 개입’을 증명해서다.

 

캣 반 더 베르프 캔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026년은 AI를 인간의 상상력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내는가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적인 느낌을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AI의 확산은 디자이너의 소멸이 아닌,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재정의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이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여전히 인간의 온기와 손때 묻은 흔적을 갈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