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에 폭도들이 침입해 난동을 부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서부지법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 30대 무직 남성이 상당수라는 분석도,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해도 많은 시민이 가담해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촉발한 사태의 근본 원인일 순 없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발표한 ‘1·19 폭동 사건 백서’는 원인을 ‘극단적인 이분법 구조에서 사법적 판단에 대한 격렬한 반발의 일환’으로 짚었다. 이런 현상이 심화하는 데에는 정치권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법부 결정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분노가 촉발됐다는 것이다.
실제 난동 사태 가담자들은 윤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를 정치 보복으로 받아들였다. 윤 전 대통령 구속에 분노했고, 판사를 찾아내겠다며 법원에 난입했다. 영장 발부가 부당했기에 난동 역시 정당하다는 시각도 팽배했다. 한 피고인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이후 구속 취소가 됐다. 그 사실만으로도 당시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 아니냐”며 “시위 참가자들이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법은 어느샌가 정치 영역으로 빨려들었다. 그간 정치권은 ‘사법 리스크’를 활용해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했다. 입법부는 사법부 공격을 정치적 수사로 활용했다. 25년간 ‘구속영장’을 둘러싼 양당의 태도 변화에서도 이런 경향성은 확인됐다.
언어는 점차 과격해졌다. 14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001~2025년 낸 성명·논평·보도자료 등 발표문에서 ‘구속영장’이 포함된 1196건에 나타난 감정을 분석한 결과, 정치 격변이 극심한 해에 양당의 구속영장 언급 발표문은 크게 늘었다. ‘박근혜-국정농단’(2017·107건), ‘문재인-조국 사태’(2019·90건), ‘이재명-대장동 개발 비리’(2021·75건), ‘윤석열-비상계엄’(2025·200건)이 주요 기점이었다. 전체 문서에서 확인된 정서 종류에는 ‘화남·분노’, ‘의심·불신’, ‘안타까움·실망’ 등 12개 항목이 나타났다. 이 기간 양당 발표문에선 분노 정서가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통계 분석을 이끈 김종우 연세대 연구교수(사회학)는 “극단화된 양당 정치 체계 속 정치권의 사법부 공격이 숙의 민주주의를 해치고 극단 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해석을 내놨다.
25년을 5개년씩 잘라서 보면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화남·분노’ 감정 발표문 건수는 2001~2005년 9건, 2006~2010년 35건, 2011~2015년 54건, 2016~2020년 113건, 2021~2025년 270건이었다. 2001~2005년과 2021~2025년을 비교하면 30배 증가한 것이다.
◆정치 격동기·‘야당’ 때 분노 언어↑
“법원의 추경호 의원 구속영장 기각,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사법 폭거입니다.” (2025년 민주당 서면 브리핑)
정치 격변기를 지날 때마다 ‘화남·분노’ 감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했다. 특히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쳐 정권 교체를 경험한 지난해, 양당에서 ‘화남·분노’ 감정 발표문 비중이 가장 높았다.
2025년 민주당 발표문 99건 중 ‘화남·분노’ 감정 발표문은 78.8%(78건)이었다. ‘화남·분노’ 비율이 전년 대비 28.8%포인트 증가했고 다른 정서의 출현이 줄었다. ‘비장함’ 11.1%(11건), ‘불평·불만’ 6.1%(6건), ‘의심·불신’ 3.0%(3건), ‘어이없음’ 1.0%(1건) 순이었다.
국민의힘에서도 발표문 101건 중 ‘화남·분노’ 감정 발표문 비율이 1위(33.7%·34건)를 차지했다. 다만 이외에도 다양한 감정이 드러났다. ‘불평·불만 27.7%(28건), ‘안타까움·실망’ 9.9%(10건), ‘의심·불신’ 8.9% (9건) 등 8개의 감정이었다.
김 교수는 “민주당의 언어에서 분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점이 흥미롭다”며 “사회심리학 연구에서 공통으로 ‘분노’라는 정서가 사회 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분노라는 감정이 사람들을 집회·시위 같은 사회적 행위로 동원하는 힘이 됐다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차이도 나타났다.
민주당 발표문에선 여당일 때보다 야당일 때 ‘화남·분노’가 더 많이 감지됐다. 민주당 여당 시기(2003·2007·2017~2021년)에는 ‘화남·분노’ 감정이 전체 173건 문서 중에서 31.8%(55건)에 불과했다. ‘화남·분노’와 ‘안타까움·실망’(20.8%·14건), ‘의심·불신’(20.2%·24건)이 연결된 혼합 정서가 나타났다.
◆민주 ‘정의 실현 좌절’ vs 국힘 ‘야당 범죄화와 방탄 수단’
구속영장을 언급한 발표문에서 나타난 주제는 상이했다. 주제어 추출은 다량의 문서에서 많이 언급된 단어들과 이들의 연관성을 확률적으로 뽑아 주제를 정하는 ‘토픽 모델링’을 사용했다.
토픽 모델링과 정서 분석을 종합하면 ‘화남·분노’가 급격히 집중된 지난해 민주당 주제어에는 ‘기각’과 ‘증거(인멸)’가 자주 등장했다. 김 교수는 “영장 청구나 기각을 ‘정의 실현의 좌절과 그로 인한 응징 요구로 전환하려고 하는 서사가 엿보인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수사 절차 관련 주제어와 이재명 당시 대표에 대한 방탄 프레임이 함께 나타나면서 의제가 분산됐다. 그 결과 감정도 하나로 수렴하기보다는 실망, 불신 등과 혼합적으로 표출됐다.
민주당이 구속영장과 관련해 자주 언급한 단어를 분석하니 ‘기각-증거-처벌과 ‘내란-법원-특검이 주로 함께 나타났다. 민주당은 경호처와 대통령실의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 결정을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김 교수는 “구속영장이 청구되거나 기각되는 것을 정의 실현의 좌절로 판단해 응징 요구 서사로 강화했다”고 해석했다.
국민의힘에선 ‘공수처-법원-수색’이 주제어로 나타났다. 또 ‘이재명-체포-방탄’ 어휘가 함께 등장했다. 수사 절차와 사법적 판단을 나타내는 어휘가 결합해 사법 절차를 ‘야당의 범죄화와 방탄’ 프레임으로 내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구속영장 청구나 기각 여부와 관계없이 이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양상”이라며 “청구 시엔 야당을 범죄화하고, 기각 시엔 ‘특정 정치인을 방탄하는 사법부’라는 서사로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두 정당은 ‘구속 전 피의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법 절차를 강한 정서를 동원해 의제화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구속영장 청구와 기각이 ‘사법 신뢰’를 건드리며 의미투쟁을 촉발하고 있다고 봤다. 양당이 사법을 정치적 장으로 끌어들이는 ‘사법의 정치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히 2025년 분노 중심의 정서가 크게 형성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분노가) 정치적 운동을 일으키는 자원을 동원한다는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절차적 숙의 공간을 축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 공정·중립성 믿음 약화로 사태 촉발”
한국인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낮아지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부 신뢰도는 2023년 49.1%에서 2025년 33%로 16.1%포인트 떨어졌다. OECD 평균(2023년 56.9%·2025년 54%)보다도 낮다.
판사들을 둘러싼 논란도 없지 않다. 윤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유흥주점에서 직무 관련자들로부터 접대받았다는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다만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자체 심의 결과를 발표하며 의혹에 대해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다.
윤준 전 서울고법원장은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약화하는 흐름에서 서부지법 난동 사태가 벌어졌다고 봤다. 그는 “단순 법원 난입 사건으로 보면 안 되고 법원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위기 상황에 와 있단 걸 알고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제2, 3의 서부지법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 결정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제언도 했다. “법관이 정치적으로 공격당할 때 법관 스스로 대처할 수 없다”며 “법원행정처장이라든지 대법원장처럼 목소리 낼 수 있는 분들이 직을 걸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국민도 법원이나 법관을 무리하게 공격하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며 “눈치 보지 않고 사법 독립을 제대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 사법행정을 맡은 이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 이언학 변호사는 판사와 법원에 대한 공격이 반복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판사들이 소신 있는 판단을 주저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여론에 영합하는 판결만 한다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겠느냐”며 “여론이 호도되고 자판기 판사처럼 되면 법치주의는 무너지고 삼권분립 체제 자체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수자 보호라는 법원 본연의 기능을 다 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양극화돼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우리 사회가 시정되면 법원도 자연히 시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윤준호·이예림·소진영 기자
사진=남정탁·최상수 기자
편집=서혜진·도진희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기현·손성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