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법원행정처장직에서 물러나는 천대엽(61·사법연수원 21기) 대법관이 '사법개혁'과 관련해 "시민들의 염원은 분쟁해결이 사실심에서 한번의 재판으로 신속히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라며 "사법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천 대법관은 15일 오전 대법원 본관 무궁화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외부의 목소리는 존중돼야 하지만, 시급하고 복잡한 법적 분쟁을 다루는 재판 현안과 관련해 올바른 진단과 해법은 현장의 경험과 경륜에 터 잡을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사법부가 배제된 사법개혁은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수십년간 행해져온 사법제도 개편 관련 역사를 보아도 그 전례가 없다"며 "이뿐 아니라 재판 등 사법서비스의 이용자이자 당사자인 시민들을 비롯한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하게 돼 사법 접근권의 실질적 축소와 후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은 '시간과 자력을 겸비한 당사자에게 무한소송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분쟁해결이 사실심에서 한 번의 재판으로 신속히 이뤄지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에 부응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도입을 뼈대로 하는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사법부 내부의 우려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그는 2024년 재판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법관 사무분담 장기화와 법원장 재판부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2025년은 그 성과를 토대로 시민들의 사법접근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각종 제도개선을 준비했으나 2024년 말 발생한 불법 비상계엄 사태로 말미암아 그 개선작업이 무산된 아쉬움이 크다"고도 밝혔다.
천 처장은 "천만다행으로 시민들의 투철한 호헌의식과 국회의 공조 덕분에 계엄 사태는 조기 해소됐고, 그 결과 사법부 독립과 사법권도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다"며 "사법부는 다시 한번 시민들에게 빚을 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과 관련한 불법행위의 사법적 처리는 종국적으로 재판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사법부로서는 재판 이전에 이에 대해서 법적 평가를 할 수 없는 운신의 제한이 있다"며 "다만 법원행정처장의 지위에서 사법부의 중론을 반영해 국회를 제외한 헌법기관으로서는 최초로, 또한 반복해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지적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천 처장은 "그럼에도 혼란상을 딛고 들어선 새 정부 출범 후에 사법부가 개혁의 동반자가 아닌 대상으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은, 국회 및 정부와 상호 존중 하에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하려는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보게 된다"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저의 불민함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므로, 그로 인해 사법부에 불신을 갖게 된 모든 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87년 헌법 체제하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탱하는 균형추로서의 삼권분립과 사법독립은 헌법적 핵심 가치에 속하고, 이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입법권도 예산권도 없는 기관인 사법부에 대한 존중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라며 "사법부가 개혁의 동반자로 참여해야 한다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작년 말 대법원 주최로 열린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언급하며 "전문가들이 주신 고언의 요지는 '사법개혁은 수요자인 국민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추진하되 사법부도 국회와 정부, 유관 법률단체 등과 머리를 맞대 시민들에게 시급한 사법개혁 과제의 순위와 그 실현방안을 정하기 위한 절차에 나서달라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는 언급된 시급한 개혁 필요 영역 중 하나로 '사실심의 충실화와 신속화를 위한 조치, 이를 전제로 한 심급구조의 개선'을 꼽으며 "특히 사실심의 충실화와 신속화 요청은 통계적으로도 확인되는 사항이자, 재판당사자 및 변호사 등 현장의 관계자들이 강하게 요구하는 사항이고, 무엇보다 사실심 법관들이 절실한 목소리로 계속 요구해 온 오랜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천 대법관은 "이에 비춰 올해 사법부의 과제는 2024년부터 추진한 재판지연 해소방안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는 한편, 2027년부터 다양한 사법개혁 방안을 구현할 수 있도록 국회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함으로써, 사법부가 그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절차적 신중함은 사법부나 법관을 위한 것이 아니요, 사법의 최종 지향점인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며 "시민들에게는 적시의 분쟁 종식 절차로서의 사법기능 구현 및 이를 위한 충실한 제도의 마련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새로 구성될 행정처가 국회 등과의 긴밀한 소통 하에 이러한 사법개혁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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