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기원/ 칼 다이서로스/ 최가영 옮김/ 북라이프/ 2만1000원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않고, ‘과학은 인간의 고통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또 어디까지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으로 나아가는 과학신간이다. 저자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이 거론되는 생명공학자이자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그는 뇌 내부 회로에 대한 최첨단 과학적 지식과 환자 개개인에 대한 깊은 공감을 연결하며, 정신질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과 감정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상처 입은 마음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온전한 마음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저자는 불안, 갈증, 각성, 공포와 같은 생존 본능이 뇌의 특정 회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한편, 의사이자 과학자로 성장해 온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매혹적이면서도 때로는 고통스러운 임상 사례들은 감정의 생물학적 본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연민과 희망, 그리고 사회적 유대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교통사고로 임신 중이던 아내를 바로 옆에서 잃은 뒤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는 트라우마가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삶의 범위를 어떻게 축소시키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은 슬픔과 울음이라는 정서가 뇌의 신경회로 속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설명하며, 외향성과 내향성 같은 성격 차이 역시 단순한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패턴과 반응성의 차이로 이해한다. 또한 망상과 환청이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뇌의 물리적·화학적 상태와 밀접하게 얽혀 있음을 과학적으로 밝혀낸다. 거식증과 폭식증 등 섭식장애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서는 기본적인 생존 욕구마저 극단적으로 억제하는 ‘내면의 폭군’을 조명하고, 욕구와 통제의 충돌 속에서 발생하는 뇌 회로의 왜곡을 분석한다.
저자에게 과학과 의학은 우리가 겪는 심리적 고통의 구조를 밝혀 주는 하나의 ‘지도’다. 감정이 생성되는 경로를 가시화함으로써 인간을 막연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객관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과학의 힘은 전능하지 않으며, 환자의 목소리를 대체할 수도 없다. 과학은 신경회로의 결함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그 결함이 한 인간의 삶에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