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읽는 미국 근현대사/ 임상훈/ 메멘토/ 3만3000원
흑인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집에서 걸어 사무실로 출근했고 하루 일을 마치고도 버스를 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흑인들이 버스 이용을 전면 거부하는 버스 보이콧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함께 길과 도로를 걸으면서 저항과 비폭력을 상징하는 노래 ‘위 샐 낫 비 무브드(We shall not be moved)’를 부르곤 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
이들의 버스 보이콧은 그해 한 흑인 여성의 용기 있는 저항에서 비롯됐다. 그러니까 1955년 12월1일 목요일 오후 6시, 백화점에서 일을 마친 재봉사 로자 파크스는 클리블랜드 거리에서 귀가를 위해 버스를 탔다. 요금을 내고 버스 뒤편에 위치한 흑인 전용칸에서 가장 첫 줄의 빈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정류장을 하나둘 지나는 동안 앞편에 위치한 백인 전용칸의 좌석들이 차게 되었고, 엠파이어극장 앞의 세 번째 정거장에서 몇 명의 백인들이 승차하자 마침내 만원이 되었다. 버스 운전기사 제임스 F. 블레이크는 흑인 전용칸에 앉아 있던 로자를 비롯한 네 명의 흑인들에게 일어나라고 요구했다. 당시 앨라배마주에선 흑인과 백인 좌석이 나뉘어 있었는데, 백인 전용좌석이 꽉찰 경우 백인을 위해 흑인 승객들은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세 명의 다른 흑인들은 움직였지만 로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꿈적하지 않았다. 백인 운전기사는 왜 일어나지 않느냐고 묻자, 로자는 대답했다.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데요.” 블레이크는 경찰을 불러 로자를 체포하도록 했고, 로자는 몽고메리시의 버스 인종분리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로자의 체포 직후,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는 몽고메리 흑인들에게 대중버스 이용을 거부하라며 버스 보이콧을 호소했다. 젊은 목사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이 운동에 가세해 흑인 차별 철폐 시위를 주도했다. 이때 시위에서 불린 대표적 노래가 바로 집단 저항과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위 샐 낫 비 무브드’였다. 몽고메리시의 버스 보이콧은 미 전역의 관심을 받으며 380일 넘게 이어졌고, 결국 미 연방대법원은 이듬해 11월 몽고메리시의 버스 인종 분리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흑인 민권 운동 현장을 비롯해 각종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애창됐던 노래 ‘위 샐 낫 비 무브드’는 애초에 19세기 흑인들의 영가에서 비롯됐고, 1912년부터 1년 넘게 지속된 웨스트버지니아주 카나와 카운티의 페인트 크리크와 캐빈 크리크 광산 파업현장에서 널리 불렸던 대표적 노동가요였다. 회사 주택에서 쫓겨난 광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천막을 세우고 이 노래를 부르며 집단적 저항을 다짐했다.
미국의 영가이자 노동가요이자 저항 가요였던 이 노래는 멀리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도 전파됐고, 1970∼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와 노동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불려졌다. 음과 리듬은 바뀌지 않은 채, 제목만 ‘흔들리지 않게’로 바뀌었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노래는 늘 가슴 시린 사람들을 연결하고 세상을 바꾸며 역사를 기록해온 실천적 매개체였다. 특히 저항의 음악은 시대의 모순을 폭로하고 기억 투쟁의 강력한 무기가 돼 역사의 결정적 변곡점마다 함께 울려 퍼졌다. 노래의 관점은 그야말로 민중의 관점이었다.
20세기 미국 문화와 미국 소설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신간에서 ‘노래’라는 렌즈를 통해 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의 역사를 복원해 미국 자본주의 200년의 성장과 모순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서부 개척과 원주민 학살을 정의이자 신이 내린 의무로 합리화한 ‘명백한 운명’, 어떤 차이도 사소하다며 인종차별과 계급 갈등을 무마한 ‘용광로 신화’, 베트남전쟁과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드러난 제국주의적 야욕,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흑인과 빈곤층을 때려잡는 내부 통치 전략. … 이주와 개척, 자유와 민주주의의 성공 신화로 포장된 미국사의 중심에는 원주민 학살과 노예제, 이주와 노동자 탄압, 남북전쟁 이후 재건, 인종 분리,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균열의 서사가 놓여 있다.
책은 바로 노래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가 어떻게 원초적이고도 이기적인 이익 추구를 자유와 동일시하면서 구축되어 왔는지, 인종과 계급에 대한 착취를 연로로 삼아 발전해 왔는지를 비판적으로 서술한다.
이밖에도 블랙 파워와 흑인 해방운동의 정신적 무기였던 존 콜트레인의 ‘어 러브 슈프림(A Love Supreme)’, 전쟁과 차별에 신음하는 현실을 고발한 밥 딜런의 ‘어 하드 레인즈 어 고너 폴(A Hard Rain’s A-Gonna Fall)’, 베트남전쟁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맞선 1960년대 반문화 운동 때의 피트 시거와 밥 딜런 등의 포크음악, 흑인들의 ‘비공식 저널리즘’이 된 힙합까지 미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른 수많은 노래와 음악의 역사적 배경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비록 미국 근현대사 서술은 다소 혼란스러워 아쉽지만, 음악의 형식적 특징을 사회 변화의 지표로 읽어내는 분석력이나 노래뿐만 아니라 문학,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통섭적 접근, 한·미 근현대사를 잇는 비교사적 시각 등은 무미건조한 역사서의 틀을 훌쩍 넘어선다는 점에서 미덕이 많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즈음, 서부 음악도 동부 음악만큼이나 세련되고 들을 만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마마스 앤 파파스의 존 필립스가 만들고 스콧 매켄지가 1967년 부른 노래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가 귀에서 은은하게 들릴 지도.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머리에 꽃을 꼭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그곳에서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샌프란시스코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여름은 사랑이 가득한 곳이 될 거예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