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로 와인 태생 둥이’ 줄스 테일러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신화와 자라/킴 크로포드 등 수석 와인메이커로 이름 날리다 2001년 줄스 테일러 첫선/동료 와인메이커 블라인드 테이스팅 통과해야 출시 가능/2025년 IWSC ‘올해 와인메이커’ 등극
우리나라에서 없어서 못 팔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뉴질랜드 소비뇽블랑의 고향은 남섬의 말보로(Marlborough) 입니다. 뉴질랜드 와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말보로 역시 상업적인 포도재배가 본격 시작된 것은 불과 1973년입니다. 그 해에 태어난 한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뉴질랜드 소비뇽블랑 와인 산업이 짧은 시기에 눈부시게 성장하는 신화를 눈으로 목격하며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인으로 전 세계 소비자를 열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소비뇽블랑의 여왕’ 줄스 테일러(Jules Taylor) 입니다.
◆말보로 와인 역사
스코틀랜드 출신의 데이비드 허드(David Herd)가 1873년 말버러 남부 계곡 페어홀(Fairhall) 지역에 와이너리 언츠필드 에스테이트(Auntsfield Estate)를 설립하고 매우 소규모의 브라운 머스캣(Brown Muscat) 품종을 처음으로 심으며 말보로의 와인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포도밭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고 상업적인 규모의 포도 재배가 시작된 것은 100년 뒤인 1973년입니다. 몬태나 와인즈(Montana Wines·현 Brancott Estate)가 말버러 와이라우 밸리(Wairau Valley)에 대규모로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말보로 소비뇽 블랑의 역사가 태동합니다.
말보로 소비뇽블랑은 아주 짧은 역사에도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향과 맛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됩니다. 풀냄새, 아스파라거스, 레몬, 라임, 구즈베리, 엘더베리향이 특징이며 조금 더 익으면 패션푸루트 느낌도 더해집니다. 피망, 아스파라거스 등 포도 자체가 풋풋한 아로마와 강렬한 산도를 지녀 와인메이커가 이것저것 손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주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고 사과산을 젖산으로 바꾸는 말로라틱 퍼먼테이션, 효모 앙금과 숙성하는 쉬르리(Surlees), 오크 숙성을 거의 안하고 맑고 깨끗하고 순수하게 과일향과 산도를 뽑아냅니다.
◆와이라우 밸리 vs 아와테레 밸리
말보로는 서늘한 해양성 기후에 일조량이 좋아 풍부한 풍미를 지닌 소비뇽블랑이 나옵니다. 말보로에는 독특한 떼루아를 만드는 두 개의 강 와이라우(Wairau)와 아와테레(Awatere) 강이 흐르며 이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와이라우 밸리(Wairau Valley), 아와테레 밸리(Awatere Valley)에 말보로의 최고의 포도밭들이 몰려있습니다.
▶와이라우
오래된 강바닥의 자갈 토양이 특징으로 시원하고 건조한 내륙 지역, 황량한 돌밭 지역, 해풍의 영향을 받는 해안 지역으로 이뤄졌습니다. 따뜻하고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포도가 잘 익는 곳입니다. 감귤과 패션푸르트의 강렬한 열대과실 풍미와 바디감이 지닌 와인이 생산됩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햇살이 밝고 건조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와이라우는 마오리어로 ‘구멍이 뚫린 구름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케이 푸타 테 와이라우(Kei Puta Te Wairau)’에서 유래됐습니다.
▶아와테레
내륙의 카이쿠라 산맥에서 바다로 뻗어나간 산지로 와이라우에 비해 규모가 작고, 포도나무 식재 시기도 늦습니다. 바다와 붙어있어 와이라우보다 훨씬 남쪽이라 더욱 서늘하고 건조하며 바람이 많이 붑니다. 주로 점토질 토양입니다. 특히 고도가 높은 곳의 포도밭에서는 포도가 천천히 숙성되면서 아로마틱한 피노누아와 드라마틱하고 독특한 소비뇽 블랑이 생산됩니다. 허브, 그린, 잎사귀, 피망 맛을 살린 느낌과 선명한 산미와 깔끔한 구조감, 미네랄로 차별화합니다.
▶남부밸리(Southern Valleys)
오마카(Omaka), 페어홀(Fairhall), 브랜콧 (Brancott), 벤 모르반(Ben Morvan), 와이호파이 밸리(Waihopai Valley)가 주변 언덕을 감싸며 중요한 서브 지역을 형성합니다. 점토 토양이 많아 좀 더 우아하고 아로마틱한 피노누아가 특징입니다.
◆소비뇽 블랑과 자란 줄스 테일러
한국을 찾은 줄스 테일러를 만났습니다. 줄스 와인은 나라셀라에서 수입합니다. 줄스가 처음부터 와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보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그녀는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과학을 전공했지만 거창한 계획은 없었고 그저 와인이 좋아져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의 링컨 대학교(Lincoln University)에서 다시 포도재배학(Viticulture)을 공부합니다. 학위를 마친 줄스는 2년동안 말보로에서 와인 양조, 판매, 서비스, 소믈리에 등 와인 업계 전반을 두루 경험한 뒤 본격적으로 세계 여러 와인 산지 탐험에 나섭니다.
“이탈리아와 호주에서 수많은 빈티지를 양조하며 실력을 쌓았는데 특히 피에몬테 3년, 시칠리아 5년 등 8년동안 양조뿐만 아니라 와인 산업 전반을 깊게 경험했어요. 특히 이때 다양한 음식과 와인을 페어링하며 즐기는 문화의 매력에 푹 빠졌답니다. 이에 매년 수확철이 끝나면 번 돈 대부분을 여행에 쓰며 세계 여러 와인 산지를 돌아다녔죠. 오스트리아와 호주 와이너리에서 양조 실력을 갈고 닦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줄스는 와인 업계에서 첫 직장을 얻기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와인 산업 전반에 여성 와인메이커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양조 업무 자체가 체력 소모가 큰 중노동이라 여성 와인메이커를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줄스의 양조 실력이 점차 알려지면 2000년 말보로 밸리 셀라스(Marlborough Valley Cellars)에서 수석 와인메이커로 일했고 이 때 큰 명성을 쌓게 됩니다. 말보로 밸리 셀라스는 커스텀 크러시(Custom Crush) 시설입니다. 포도를 재배하거나 브랜드를 가진 생산자가 자기 양조장 없어도 와인을 만들 수 있도록 포도 파쇄, 발효, 숙성, 병입 등 양조 설비와 인력, 기술을 유료로 제공하는 전문 와인 생산 시설을 말합니다. 이 때 줄스가 수석 와인메이커로 와인을 양조한 브랜드가 바로 킴 크로포드(Kim Crawford), 생 클레어(St. Clair), 케이프 캠벨 와인스(Cape Campbell Wines) 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와인들입니다.
◆‘소비뇽 블랑 여왕’ 되다
줄스는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인을 만들어 보라는 친구와 멘토의 격려를 등에 업고 2001년 말보로 밸리 셀라스의 생산시설을 빌려 ‘줄스 테일러’ 와인 400케이스를 생산합니다. “첫 해 리슬링과 피노 그리를 생산했습니다. 소비뇽블랑은 없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품종을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내 이름으로 만드는 게 두려웠답니다.”
와인이 안 팔리면 크리스마스에 파티에서 친구들과 먹으면 된다는 심정으로 만든 와인이 호평을 받자 클라우디 베이에서 일할 때 만나 결혼한 조지 엘워디(George Elworthy)와 본격적으로 와인 생산을 늘렸고 2005년 드디어 소비뇽블랑이 탄생합니다. 줄스는 빼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2021년 고메 트레블러 와인 매거진(Gourmet Traveller Wine Magazine) ‘뉴질랜드 올해의 와인메이커’로 선정됩니다. 또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스피릿 국제 품평회 IWSC(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 2025 와인메이커 상도 수상하면서 ‘소비뇽블랑의 여왕’에 등극합니다.
줄스는 ‘아펠라시옹 말버러 와인(Appellation Marlborough Wine)’의 창립 멤버이기도 합니다. 이 단체의 회원 와이너리는 100% 말버러에서 재배된 포도만 사용하고, 지속가능성 인증을 받아야 하며, 지역 내에서만 병입해야 합니다. 특히 모든 와인은 동료 와인메이커들로 구성된 패널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출시가 가능합니다.
◆줄스 테일러 와인
줄스 테일러는 피노누아, 피노 그리, 그뤼너 벨트리너, 샤르도네, 스위트 와인 레이트 하베스트 와인도 만듭니다. 또 한정 생산 싱글 빈야드 시리즈인 ‘온 더 콰이어트(On The Quiet)’, 그리고 남편 조지가 만든 ‘더 베터 하프 와인즈(The Better Half Wines)’도 생산합니다.
▶줄스 테일러 더 베터 하프 소비뇽 블랑
라임, 자몽, 레몬 버베나, 청사과, 풀 향이 어우러지며 유질감 있는 미네랄이 인상적입니다. 말보로를 대표하는 직관적인 스타일로, 산도를 다소 낮추고 약간의 당도를 남겨 크리스마스, 피크닉 등에 잘 어울립니다. 남편 조지가 양조한 와인으로, ‘더 나은 반쪽’이라는 이름에는 부부의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저온 발효를 3주 이상 진행합니다. 신선한 조개· 홍합·새우 등 갑각류 요리, 레몬이나 라임을 곁들인 피크닉 스타일 해산물, 가벼운 샐러드 및 시트러스 계열 요리, 신선한 허브·채소를 활용한 요리, 가벼운 그릴 요리, 채소 꼬치, 로스트 연어와 고트치즈 샐러드, 베트남식 코코넛 치킨과 쌀국수 등과 잘 어울립니다.
▶줄스 테일러 소비뇽 블랑
레몬 그라스, 감귤류, 자몽, 흰복숭아, 청사과, 패션프루트, 파인애플 등 보다 잘 익은 과실 향이 특징입니다. 산도가 공격적이지 않고 효모 앙금 숙성을 통해 볼륨감을 더했습니다. 더 베터 하프가 각진 육각형이라면, 이 와인은 1년의 병 숙성을 거치며 둥근 원으로 다듬어진 느낌입니다. 드라이하고 깔끔한 구조, 밝은 산도와 긴 여운이 돋보이며 피니시에서 허브와 미네랄도 느껴집니다. 레몬 또는 허브를 곁들인 흰살 생선, 신선한 굴·홍합·새우 요리, 새콤한 해산물 세비체, 허브·그린 샐러드, 구운 닭고기, 레몬·허브 소스를 곁들인 해산물, 가벼운 파스타나 피시앤칩스와 잘 어울립니다.
▶줄스 테일러 샤르도네
손수확 후 전송이 압착을 진행하며, 멘도사 클론을 포함한 3종의 클론을 사용합니다. 30%는 배럴, 70%는 스틸 탱크에서 발효해 오크 터치를 최소화하면서도 복합미를 살렸습니다. 열대 과실보다는 시트러스 중심의 균형 잡힌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밝고 생기 있는 시트러스(레몬·만다린 껍질)와 흰 꽃 아로마가 돋보입니다. 깎은 사과, 배, 흰복숭아, 약간의 토스트, 아몬드, 스파이스가 잘 어우러집니다. 말버러의 서늘하지만 일조량 좋은 기후에서 자란 포도의 밝은 산도와 미네랄 감을 살리면서도 적절한 오크와 숙성으로 구조감과 깊이가 느껴집니다. 레몬·오레가노로 구운 닭고기, 버터 소스를 곁들인 칠면조 요리, 구운 연어, 트라우트, 허브·시트러스 기반 소스를 곁들인 흰살 생선, 크리미한 소스 파스타와 잘 어울립니다.
▶줄스 테일러 피노 누아
레드 체리, 보이즌베리, 딸기, 플럼, 장미, 허브, 향신료가 어우러지며 시간이 지나면 다크 초콜릿, 스파이스, 약간의 흙내음, 허브 노트도 감지됩니다. 산도와 당도의 균형, 실키한 탄닌이 인상적입니다. 말보로 피노 누아의 정제된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와인입니다. 샤퀴테리 플래터, 가벼운 소시지, 푸아그라 토스트, 구운 양다리 로스트·그릴 스테이크, 치킨 다리살, 브리· 고르곤졸라 등 미디엄 체리, 약간 숙성된 고다·콩테 치즈와 잘 어울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