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회가 개최한 ‘미국의 혁신과 기술 리더십 유지’ 청문회에서 한국 정부는 자주 ‘차별국가’로 도마에 올랐다. 에이드리언 스미스 위원장(공화·네브래스카)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양국 공동 팩트시트에서 한국이 미국 기업들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도 약속과 다른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 규제 당국은 이미 미국의 기술 리더들을 공격적으로 표적 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쿠팡에 대한 차별적 규제 조치가 한 사례”라고 한국 정부를 성토했다.
이날 청문회는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미국의 동맹국들의 디지털 규제와 관련해 미국 기업이 차별조치를 받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자리였다. 미국 기술기업들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디지털 규제와 관련해 미 행정부·의회에 강한 로비를 하고, 미 의원들이 자국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외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양국 공동 팩트시트에 한국이 디지털 규제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 자체가 한국 국회에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등을 겨냥한 것이며, 미 무역대표부(USTR)도 이 같은 내용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사후 규제 방식을 추구하는 미국과 사전 규제를 선호하는 유럽식 규제는 뿌리부터가 다르며, 미국은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이 유럽식 규제를 따라가는 것을 경계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나라도 겪는 일이고, 기술 발전이 막 일어나는 시점에 일어나는 ‘거버넌스 주도권 싸움’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건 한국이 별개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다만 여기에 한국의 ‘쿠팡 개인 정보 유출 사태’가 끼어든 것은 논리적 흐름이 잘 맞지 않아 보인다. 플랫폼 규율을 둘러싼 디지털 규제 논의와 대규모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책임 추궁은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권에서 두 사안이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뭉뚱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프레임이 굳어지면 한국은 정당한 소비자 보호 조치까지 통상 갈등의 언어로 공격받을 수 있다.
이날 청문회에선 한국의 디지털 규제 논의와 쿠팡 사태를 구분하지 않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캐럴 밀러 하원의원(공화·웨스트버지니아)은 청문회에서 한국이 “최근 두 명의 미국 경영인을 상대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해럴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대표와 김범석 쿠팡Inc 의장에 대한 수사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쿠팡 본사가 위치한 워싱턴주 지역구의 수전 델베네 하원의원(민주)도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체결한 통상 합의에는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차별적인 디지털 관행으로부터 보호받고 한국의 사법·규제 시스템 내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제가 (지역구인) 워싱턴주에 있는 기업들, 특히 쿠팡으로부터 듣고 있는 바로는 한국 규제 당국이 이미 약속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개인정보 침해 이슈에 매우 민감한 사회다. 사실관계가 규명되기 전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통상 이슈로 비화하는 흐름은 불필요한 오해를 키울 수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주 한국의 디지털 규제 동향에 대한 미국 정부와 정치권 등의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각계를 접촉했다. 여 본부장은 한국에 돌아온 뒤 “미국에서 비즈니스 하는 한국 기업이 이런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를 미국에 일으켰다면 미국도 당연히 그렇게 할 것 아니냐고 명확히 설명했고, 그런 부분에 대해 미국 관계자들도 이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말 많은’ 미 정치권에서 이미 한 번 잘못 퍼진 인식이 이 방문만으로 수그러들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할 일 많은 한국의 최고 통상교섭책임자가 이 일에만 매달릴 것도 아니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정리해 외교·통상 채널에서 반복적으로 설명할 체계가 필요하고,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