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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 집, 오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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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 절벽에 발동동…‘내 집 마련’ 대안은 없나?

매물은 자취를 감추고, 집주인은 가격을 움켜쥐었다. 서울 아파트 시장의 공기가 다시 바뀌고 있다. 거래량이 폭발한 것은 아니지만, 실수요자가 몰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협상 테이블의 무게추가 눈에 띄게 매도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 “망설이면 끝”이라는 말이 중개 현장에서 일상이 됐다.

 

매물 부족이 이어지면서 실수요자 선호 지역을 중심으로 집주인 협상력이 다시 강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벽면에는 매물 안내장이 거의 붙어 있지 않았다. 대신 상담대 한쪽에 놓인 것은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대기자 명단이었다. 중개업소 대표는 “요즘은 집을 보여주기보다, 매물이 나오면 바로 연락해 달라는 손님이 더 많다”며 “특히 직장 접근성 좋은 곳은 집주인이 가격을 내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표가 먼저 흔들렸다

 

체감만의 변화는 아니다. 숫자도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19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매수우위지수는 76.5를 기록했다. 기준선인 100에는 못 미치지만, 연초 30대 중반까지 밀렸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회복이다. 시장에선 “보수적으로 집계되는 지표 특성을 감안하면, 현장 체감은 이미 그 이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선 변화가 더 분명하다. 이달 초 기준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100을 넘긴 상태를 넉 달 넘게 이어가고 있다. 중개업계에선 이를 두고 “호가를 깎는 시장이 아니라, 맞춰 들어가는 시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매물은 사라지고, 선택지는 좁아졌다

 

분위기를 뒤집은 핵심 원인은 단순하다. 물건이 없다.

 

부동산 플랫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 수는 1년 전보다 30% 이상 줄었다. 중개업소마다 “보여줄 집이 없다”는 말이 반복된다. 매물이 줄수록 비교는 어려워지고, 결정은 빨라질 수밖에 없다.

 

마포구에서 첫 집 마련을 고민 중인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어제 본 집을 두고 고민했는데, 다음 날 연락해 보니 이미 계약됐다고 하더라”며 “가격이 부담돼도 괜찮은 물건이면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음엔 더 비싸질 것 같다는 불안도 솔직히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움직이는 ‘첫 매수’ 수요

 

조급함은 실제 매수로 이어지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생애 처음 집합건물을 매입한 사람은 6만명을 넘어섰다. 전년 대비 20% 넘게 늘어난 수치다.

 

과열기를 제외하면 이례적인 증가폭이다. 특히 30대 비중이 절반에 가까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판단이 확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감한 매물 수로 인해 ‘나오면 바로 계약’ 문의가 늘며 시장 분위기가 매도인 우위로 기울고 있다. 게티이미지

여기에 ‘똘똘한 한 채’ 선호가 맞물렸다. 대출 규제와 세 부담이 이어지면서 여러 채를 나누기보다, 입지가 확실한 한 채에 자산을 집중하려는 흐름이 강해졌다. 수요는 서울 핵심지로 쏠리고, 적은 매물은 더 귀해졌다.

 

한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서울 핵심지는 조정이 와도 회복이 빠르다는 인식이 굳어졌다”며 “이 기대감이 집주인들의 버티기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가격보다 ‘타이밍’의 싸움

 

지금의 서울 시장은 폭등도, 침체도 아니다. 다만 매물 부족과 심리 회복이 맞물리며 협상의 주도권이 매도인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수요자 앞에는 ‘조금 더 기다릴 것인가, 지금 결정할 것인가’라는 선택지만 남았다.

 

중개업소 한 관계자의 말이 요즘 시장을 요약한다. “요즘 계약은 가격 싸움이 아니라 타이밍 싸움이에요. 집주인은 버티고, 매수자는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립니다.”

 

조용하지만 팽팽한 줄다리기. 서울 아파트 시장의 긴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