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파도처럼 밀려오는 ‘탄생’… 홀로 시작되는 존재는 없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몸이 세계가 되는 순간 - 이은실의 ‘파고’

‘출산’이란 개인적·신체적 경험서 출발
고통·파열·범람 순간 동양화 기법 기반
파도·용암 같은 자연적 이미지로 전이
‘모성애’ 성립까지의 과정·조건 되물어
‘사랑의 세계’ 진동과 출렁임 등 시각화

우리는 모두 하나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 탄생이란 보호와 안락의 껍질을 벗어나는 사건으로, 하나의 세계를 파열해야만 가능하다.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태어난다고 말하지만, 홀로 시작되는 존재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해체라는 질서를 따라 이곳에 도착한다.

한 생명의 출현은 다른 생명의 신체와 시간에 균열을 남긴다. 태어남은 독립의 순간인 동시에, 하나의 세계가 흩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태어나기 위해, 그리고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두 세계가 갈라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은실, ‘에피듀럴 모먼트’(2025).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통과한 자연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이은실(b. 1983)의 개인전 ‘파고’(2025년 12월17일∼2026년 1월31일)는 ‘출산’이라는 개인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감각한 고통과 파열, 범람의 순간을 동양화 기법에 기반한 자연적 이미지로 치환한다. 이은실은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가던 시기 두 차례의 출산을 겪었다. 이후에도 작업을 지속했으나,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이 사건을 온전히 마주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과 거리의 축적이 필요했다. 수년이 지난 뒤에야 그는 비로소 작업실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출품작들은 모두 출산 전후에 감각된 경험에서 비롯되지만, 이은실은 출산의 의미를 규정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그것을 미화하지도, 공포의 서사로 환원하지도 않으며, 모성이나 희생의 언어로 봉합하지도 않는다. 대신 작가가 견뎌야 했던 물리적?정신적 충격은 극단적으로 확대되거나 반대로 비인칭적인 거리로 밀려나 파도, 용암, 안개와 같은 자연의 운동으로 전이된다. 이러한 거리 조절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경험을 해석이나 서사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된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은 더 이상 ‘몸’이 아니라 에너지의 밀도가 되고, 멀어지면 개인의 사건은 자연의 원리와 현상으로 확장된다.

휘몰아치는 화면은 자연의 ‘숭고함’을 극적으로 표현한 낭만주의 회화나, 기의 흐름과 우주적 질서를 시각화한 북송의 산수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은실의 자연은 외부에서 관조된 대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한 감각이 직조된 풍경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구별된다. 그것은 작가가 통과해 낸 자연으로, 삶의 경험이 세계의 리듬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소용돌이와 바람, 검은 태풍의 점, 뭉쳐 흐르는 공기. 임계점을 넘어 솟구치는 용암과 망막을 태워버릴 듯 작열하는 태양의 열. 자연 현상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모두 출산의 과정에서 마주한 몸의 안과 밖의 형상들이다. ‘고군분투’는 힘을 너무 많이 줘 터져버린 눈의 실핏줄을, ‘흔적’은 복부에 남은 튼살을 흩날리는 꽃잎 혹은 일렁이는 불꽃처럼 형상화한다. 화면에 남겨진 것은 사건의 재현이 아닌 끓어오르는 감정, 감각의 강도다. 몸의 통각은 파도가 되고, 분열의 순간은 하늘을 가를 듯 치솟는 기세로 응축된다.

 

이은실, ‘넘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태도’, ‘전운’.

◆사랑의 조건

생명을 잉태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흔히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로 묘사되지만, 그것을 겪어내는 자에게 공포와 트라우마로 각인되기도 한다. 출산은 의도되기도, 의도되지 않기도 하며 축복되기도, 부정되기도 한다. 한 존재가 세계에 착지하는 순간, 사랑과 공포, 고통과 희열은 분리되지 않은 채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은실은 이러한 좋고 나쁨의 구분, 의미와 가치 판단 이전에 놓인 순수한 경험으로서의 출산을 가시화한다. 여성에게 지어지는 짐, 사회적 시선과 압박, 고통과 책임, 모성애에 대한 담론은 그 이후의 해석으로 남겨진다.

비록 작가의 거리두기가 출산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토록 극적인 사건을 견디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산후 유선염을 소재로 한 ‘넘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태도’에서 암시된 바 있다. 의지와 다르게 작동하는 신체의 한계에 대한 이 작업은 몸과 마음 사이에서 극복되지 못한 간극을 드러낸다.

폭 7.2m에 달하는 ‘에피듀럴 모먼트’는 통증 완화를 위해 마취제가 투여된 이후 작가가 경험한 환각의 순간을 다룬다. 해체된 골반뼈와 신체의 파편들이 부유하고, 뱀인지 이무기인지 모를 존재가 똬리를 풀며 몸을 일으킨다. 화면 중앙을 가르는 노란 빛줄기는 천지개벽을 알리듯 낙하하며, 수평으로 퍼져나가는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마취로 인한 고통의 소거가 아니라 견딤이 발생하는 상태이다. 네 폭으로 구성된 이 대작은 신체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의 끝에서, 하나의 세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장면을 의식과 감각이 풀려나는 경계에 겹쳐 놓는다.

 

이은실, ‘고군분투’(2025).

찢어지고 범람하며 휘몰아치는 풍경은 흔히 ‘모성애’라 불리는 형태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기보다, 그것이 성립되기까지의 과정과 조건을 되묻는다. 전시는 관계 속에서 타자에게 몸을 내어주며 발생하는 변화와 확장을 중심에 둔다. 몸을 내어준다는 것은, 개인의 몸과 감각이 더 이상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때 주체는 필연적으로 취약해지고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은실의 회화가 포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완전함을 통과하며 드러나는 힘이다. 따라서 화면에 펼쳐진 풍경은 물리적 체험의 재현이라기보다, 사랑의 세계에 진입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진동과 출렁임을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은실, ‘흔적’(2025).

◆파고 앞에서

이은실이 전시를 통해 불러오는 것은 출산하는 주체와 태어나는 존재 사이를 잇는 탯줄의 감각이지만, 그것은 곧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높낮이와 변곡점들로 확장된다. 전시의 제목인 ‘파고(波高)’로 되돌아가 본다면, 출렁임은 중력이 존재한다는 증거이자 세계가 중심을 두고 움직이고 있음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징후다. 이은실의 회화는 이 출렁임을 하나의 개인적 체험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삶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여리고 취약한 몸을 휩쓸었던 통각은 더 이상 개인의 몸 안에 머물지 않고 밖을 향해 열리는 감각으로 전환된다. ‘파고’ 앞에서 우리는 이곳으로 향하게 한 수많은 물결을 희미하게 감각하며, 이미 한 번 건너온 생의 조건들을 다시 더듬게 된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