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인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을 담합했다며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해당 은행들이 담보대출의 중요 거래조건인 LTV를 사전에 교환하고 다른 은행보다 낮은 수준의 LTV를 유지해 경쟁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계대출을 받으려는 서민이나 소상공인, 기업이 충분한 대출을 받지 못해 생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는 지적이다. 경쟁제한적 정보교환행위 금지규정이 신설된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2021년 12월 이후 나온 첫 제재 사례다.
21일 공정위에 따르면 4개 은행의 실무자들은 2022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최소 736건에서 최대 7500건에 이르는 LTV 정보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각 은행의 LTV 담당 실무자들은 필요할 때 다른 은행에 정보를 요청하고 제공받았는데, 이들이 법 위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정보교환의 흔적을 지운 정황까지 파악됐다.
일례로 실무자들은 직접 만나서 LTV 정보를 인쇄물의 형태로 교환한 뒤 이 정보를 엑셀파일에 입력하고 인쇄물은 파기했다. 이들은 담당자가 교체되더라도 정보교환이 계속 이뤄질 수 있도록 후임자에게 인수인계까지 해가며 정보교환을 실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내부적으로 인수인계를 거쳐 오랫동안 진행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LTV는 담보대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거래조건이다. LTV에 따라 대출가능금액, 대출금리, 대출서비스 수준 등이 달라질 수 있다. 통상 LTV가 낮아지면 특정 담보를 통해 받을 수 있는 대출의 규모도 줄어드는데, 은행은 이 과정에서 담보물에 의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반면 대출을 원하는 차주는 원하는 만큼 대출을 받지 못한 경우 금리가 더 높은 신용대출 등을 통해 대출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차주가 손해를 봤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문 국장은 “차주들은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에서 약 6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4개 시중은행의 LTV가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돼 거래은행 선택권이 제한되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며 “LTV는 기업대출이나 가계대출 모두에 적용되지만, 기업대출의 경우 LTV 규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계대출보다 은행별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LTV 낮춰 차주 부담 늘려… 2년간 이자수익 6.8조
실제 공정위가 파악한 4개 시중은행의 전체 LTV는 2023년 기준 국민은행 60.52%, 신한은행 62.48%, 우리은행 61.93%, 하나은행 63.26%로 60% 초반대에 머물러 있다. 반면 나머지 은행의 평균은 69.52%로 4개 은행보다 7.5%포인트 높게 형성돼 있었다. 공장과 토지 등 비주택 LTV는 국민은행 58.63%, 신한은행 60.40%, 우리은행 59.64%, 하나은행 61.02%로 비담합은행의 68.72%보다 8.8%포인트 낮았다.
공정거래법은 거래조건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해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는 4대 시중은행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과징금 2720억14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관련 매출액은 각 은행이 담보대출을 통해 얻은 이자수익을 기준으로 한 6조8000억원으로, 가중·감경 사유는 없었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 697억4700만원, 신한은행 638억100만원, 하나은행 869억3100만원, 우리은행 515억3500만원이 각각 부과됐다. 다만 이번 담합으로 인한 피해액이나 부당이득 규모는 산정하지 않았다.
이번 제재는 2021년 12월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에서 새롭게 규정한 경쟁제한적 정보교환 담합행위 금지 규정이 적용된 첫 번째 사례에 해당한다. 문 국장은 “2024년 11월 전원회의가 열렸고 심의 과정에서 새롭게 주장된 여러 사항에 대한 사실관계를 추가 확인하기로 해 재심사가 진행됐다”며 “재조사는 LTV가 부동산 담보대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에 대해 중점적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이 같은 제재가 처음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일단 신중하게 내용을 파악하며 소송절차 등을 검토한다는 반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단순 정보교환을 담합으로 규정한 부분에 대해 법리적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1∼2개월 내 의결서를 수령한 뒤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면 행정소송 등 필요한 법적 절차를 밟아 입장을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추후 행정소송 등으로 이어질 것 같다”며 “정보교환을 담합으로 본 건 공정위 의견이고, 저희는 리스크 관리 목적일 뿐 고객 편익 저해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LTV 국가 가이드라인이 저희가 적용한 수준보다 더 낮으며, 대출 가부 결정은 LTV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체 자금 용도와 목적, 신용등급에 따라 하기 때문에 LTV 교환에 따른 결과 차이가 크게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의 LTV 규정에 따랐다는 은행 측 주장에 대해 문 국장은 “이번 제재 대상은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모두 적용되는 사항이라 가계대출에 대한 규제 LTV가 적용되는 부분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문 국장은 “이번 사건은 금융 분야에서 장기간 유지됐던 경쟁제한적 행태를 적발해 제재한 것”이라며 “독과점이 고착화된 분야에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고 중소기업에게 필요한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해 경제활력을 제고하는 생산적 금융의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