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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70주년에 '오천피' 축포…'오뚝이 저력' 한국 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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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증권거래소 1956년 12개사로 출범…오늘날 시총 30만배 불려
1989년 1,000 찍고 2007·2021·2025·2026년 앞자리 갈아치워
금융위기·코로나·계엄 등 숱한 위기에도 우뚝

22일 한국 증시가 태동한 지 꼬박 70년을 맞아 '오천피'(코스피 5,000)로 역사를 다시 썼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월 2일 개장식에서 "병오년 붉은 말의 힘찬 질주와 같이 코스피가 5,000을 넘어 프리미엄 시장으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힌 포부가 시장 기대보다도 빨리 실현된 것이다.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장중 5000p를 넘으며 개장하자 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꿈의 지수'가 어느덧 현실이 되기까지 한국 증시는 굴곡의 여정을 거듭했지만, 위기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 유가증권시장의 뿌리는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 출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53년 11월 설립된 대한증권업협회가 주식시장 개설을 추진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가 태동했다.

당시 한국 증시의 상장사는 12개에 불과했다

조흥은행, 저축은행, 한국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등 일반기업 6곳, 정책적 목적으로 상장된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뿐이었다.

현재처럼 전산 처리가 어려웠던 당시엔 대리인의 손짓과 목소리로 호가와 수량이 제시되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증권매매가 이뤄졌다.

첫해 거래규모는 오늘날 화폐단위로 환산할 때 주식 3억9천만원에 불과했다.

12개로 출발한 상장사는 1973년 처음으로 100개를 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유가증권시장 843개사·코스닥 1천816개사 등 2천659사로 늘어났다.

개장 첫해 150억원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은 1월 16일 코스피로만 따지면 4천조원을 처음으로 넘었다.

코스닥시장까지 합산하면 4천518조1천984억원으로 약 30만배로 늘어났다.

거래소 문을 열었던 상장사 상당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은 각각 1974년 6월과 11월에 상장폐지됐고, 4개 은행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후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모두 상장폐지 수순을 밟았다.

경성전기와 남선전기는 조선전업과 함께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되면서 1961년 6월 상장사 명단에서 사라졌고, 조선운수는 대한통운의 전신인 한국미곡창고에 합병돼 1962년 1월 상장폐지 됐다.

대한해운공사와 조선공사는 한진그룹에 넘어가 각각 한진해운과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고, 한진해운은 법원의 파산 선고로 2017년 상장폐지됐다.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장중 5000p를 넘으며 개장하자 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경성방직은 1970년 경방으로 변경해 여전히 증시에서 거래 중이다.

증권시장이 본격적으로 기틀은 닦은 것은 정부가 증권시장의 발전을 위해 1962년 1월 증권거래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1961년 4억원에 불과했던 주식거래 대금은 이듬해 1천억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1962년 5월의 '증권 파동' 때 첫 위기가 찾아왔다.

시장의 급격한 팽창을 노린 투기세력으로 인해 거래소가 지급 불능에 빠진 것이다.

당시 주식회사 거래소가 부도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투자자가 속출하고 시장도 장기간 휴장에 들어가는 등 파장이 컸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되살리고자 1968년 자본시장육성 특별법과 1972년 기업공개촉진법 등을 제정하면서 1970년대엔 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이뤄졌다.

코스피는 1983년 1월 4일 122.52로 처음 공표됐다. 이 지수는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을 기준(100)으로 처음 산출된 것이다.

1989년 3월31일 최초로 1,000을 돌파하며 '네자릿수 지수'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는 서울 아시안게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며 유가·금리·달러 등 이른바 '3저 효과'와 국민주 보급 등에 힘입어 주식 대중화가 진행된 시기다.

1992년 외국인 직접 투자가 전면 허용되면서 세계로 나온 국내 주식시장은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이듬해 6월16일 277.37까지 추락하고 굵직한 기업이 줄줄이 상장폐지되는 등 크게 휘청였다.

이후 구조조정과 제도 정비로 체질을 개선하고 정부기술(IT) 투자 열풍을 바탕으로 반등해 1999년 1,000선을 되찾았지만, IT 거품 붕괴와 건설경기 과열 후유증, 9·11테러로 다시 400선까지 떨어졌다.

2007년 7월 급속한 경제 회복과 펀드 투자 열풍 등에 힘입어 2,000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삼천피' 기대가 불어오기도 잠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다시 1,000선 밑으로 떨어졌다.

2017년 세계 반도체 경기 호황에 힘입어 2,500선을 넘어서기도 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촉발한 미중 무역갈등 등 여파로 다시 하락세가 시작됐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1,500선까지 추락했다가 개인 매수세가 유입된 '동학개미운동'과 전 세계 초저금리 정책에 따른 경기 부양 기조로 다시 급반등해 2021년 1월 '삼천피'에 도달했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여파 등으로 2,399.49로 마감했던 코스피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부양책 기대로 분위기가 반전되며 작년 6월 3,000을 회복했고 10월27일 '4,000 시대'에 진입했다.

지난 한 해 동안 75.9% 오른 코스피는 새해 들어서도 상승 동력을 유지하며 이날 5,000선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