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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눌러 쓴 성찰의 편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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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10주기 맞이해 추모 전집 출간
신문 연재 원고·유고집 등 수록
북콘서트·서예전 등 잇단 행사

교수들이 강의한 그의 삶·사상
책으로 엮은 ‘다시 읽기’도 펴내

신영복 전집(전 11권)/ 신영복/ 돌베개/ 합계 24만원

신영복 다시 읽기/ 권진관·김동춘·김진업 등 13인/ 돌베개/ 2만5000원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하게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섭씨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신영복 전집 1권-감옥으로부터의 사색’, 473쪽)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11권짜리 ‘신영복 전집’과 그의 사상과 삶에 대해 교수 13명이 강의한 내용을 담은 ‘신영복 다시 읽기’가 출간됐다. 사진은 생전 신영복의 모습과 그가 감옥에서 쓴 편지. 돌베개 제공

필기도구를 지참하는 것이 금지된 감옥.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집필실에 들어가서 교도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을 정리하고 교정까지 다 본 뒤 집필실에 들어서야 했다. 무더웠던 1985년 8월, 그는 형수에게 위와 같은 편지를 보냈다.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임용돼 강의를 하던 신영복(1941~2016) 전 성공회대 교수는 1968년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에서 복역하게 됐다. 이때 그는 “징역 세월을 가장 정직하게 살아 보자” “사회의 밑바닥에서 가장 춥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정직하게 부딪치고 이 사람들 속에서 서자”(‘신영복 전집 7권-손잡고 더불어’, 20쪽)라고 다짐한 뒤 감옥생활에 임했다.

신영복/돌베개/합계 24만원
권진관·김동춘·김진업 등 13인/돌베개/2만5000원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일정과 시간 속에, 가난하고 춥게 살아온 사람들 속으로 자신의 몸을 맡기자, 거대 담론이나 이론 등에 대한 생각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대신 그 자리에는 생활과 삶의 뿌리에서 자라난 생각들이 밀려왔다. 바깥세상에선 관심 밖이었던 것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들어왔고, 시간의 묘약을 거치며 사색으로 승화했다. 그는 삶과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태어난 사색을 담아서 아버지를 비롯해 형수와 계수, 조카 등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더 시간이 흐른 뒤 모범수로 인정되면서 그는 더 자주 사색을 담아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신영복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를 시작으로 대전교도소, 전주교도소를 거치며 인생의 4분의 1이 넘는 20년 20일을 옥에서 보냈다. 죽음과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는 깊은 성찰과 사색, 기록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감옥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이었고, 감옥에서 비로소 구원받았다고 그는 나중에 고백했다.

“인생을 가장 춥게,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사는 태도를 보고, 이런 사람들에 비해서 내가 느꼈던 생각들은 매우 사치스럽고 관념적이었다는 것과 이런 것을 내가 여기서 떨어 버릴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들이 하나의 학교 같이 새로 배우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가장 춥고 가난한 사람들의 체온으로 제 자신을 구원받았다고 생각됩니다.”(‘신영복 전집 7권-손잡고 더불어’, 20쪽)

신영복은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직후 감옥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들과 기록을 묶어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했다. 책은 100만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오랜 시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1998년 사면복권되자 정식 교수가 돼 강의를 이어가다가 2016년 작고했다.

돌베개 출판사가 신영복 선생의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대표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11권짜리 ‘신영복 전집’과, 그의 사상과 삶에 대해 전현직 교수 13명이 강의한 내용을 담은 ‘신영복 다시 읽기’를 펴냈다. 전집은 그의 대표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해외여행을 다니며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나무야 나무야’와 ‘더불어 숲’, 선생이 대학 강단에서 오랫동안 진행했던 동양고전 강의를 묶은 ‘강의’, 정년퇴임 후 자신의 글들에 대한 생각과 경험에 대해 강의했던 내용을 모은 ‘담론’, 선생이 세상을 뜬 뒤 간행된 유고집 등 모두 11권으로 구성됐다.

사단법인 더불어숲 김창남 이사장은 전집의 서문 격인 ‘신영복 전집을 발간하며’에서 “지금이야말로 선생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성찰의 의미를 함께 되새기며 확산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책 출간과 함께 신영복 선생의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각종 행사도 열린다. 북콘서트(1월 30일)와 서예전(2월 4~9일), 신간 ‘글을 쓰다가, 신영복’ 출간(5월) 등 그의 10주기를 조명하는 다양한 행사와 책 출간이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