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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공생·공영하는 관계’라는 인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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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80년사/ 강창일/ 한울/ 2만9800원

 

“‘가깝고도 먼 나라’로 불리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양국관계가 출렁이는 이유를 역사 속에서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와 사람을 분리해서 보고, 감정적 반일(反日)을 버리고 이성적인 지일(知日)을 추구해야 합니다.”

‘한·일 관계 80년사’의 저자 강창일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선 이제는 양국이 ‘공생·공영하는 관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자 4선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시절 주일 대사를 역임한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다. 책은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전개된 한·일 관계의 전모를 정권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학술적 논문의 형식 대신, 독자가 한·일 관계의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망록적 성격을 가미한 평이한 문체로 풀어냈다.

강창일/한울/2만9800원

그간 한·일 관계를 다룬 수많은 저작이 피해와 가해 혹은 갈등과 협력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매몰됐다면, 저자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 권력 변화와 일본의 내각책임제 정파 변화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서술한 점에 있다. 저자는 한국의 이승만 정권이 ‘반일’을 외치며 국내 정치 기반을 다지는 동안,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요시다 독트린을 통해 경제 부흥과 미·일 안보에 집중하던 때를 상호 모순적 상황이라고 봤다. 책에 따르면,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 정권 시기 이뤄진 1965년 한일협정은 냉전이라는 거대 구조 아래에서 양국의 보수 집권층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설계한 ‘기획된 공조’였다. 일본으로부터 경제 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 등 개인의 청구권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뇌관’으로 남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주일 대사를 지낸 저자는 아베 신조의 강력한 장기 집권 체제가 일본 내 ‘아시아주의’를 어떻게 변질시켰는지, 이것이 한국의 원칙 중심 외교와 만났을 때 왜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증언한다. 저자는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후 아베가 단행한 수출 규제를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하며, 당시 외교 현장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비망록 형식으로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서는 한·미·일 안보 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과거사 문제를 성급하게 봉합하려는 시도를 ‘외교의 사유화’이자 ‘굴종 외교’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한·일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우선 국가와 국민, 정부와 사람을 분리해 바라봐야 한다는 것. 감정적 반일을 넘어 일본을 정확히 이해하는 이성적 지일(知日)이 필요하다. 그다음은 역사 문제와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해 접근하는 전략적 사고다.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요구를 유지하되, 이를 이유로 모든 협력의 가능성을 차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양국관계가 한일협정 60주년, 해방 80년을 넘어 100년을 향해 가는 상황에서 미래 한·일 관계를 조망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