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를 두고 유럽과 대치하던 중 한 발 물러선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 내부의 골을 더 깊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갈등 고조 뒤 미국 금융시장이 혼란 조짐을 보인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유럽과의 추가 협상 과정에서 다시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대서양 분열 우려했나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 의지를 강하게 밝히면서 시작된 유럽과의 갈등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의 관세 예고로 최고조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8개국을 상대로 2월1일부터 추가 관세 10%, 6월1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유럽 정상들은 보복관세와 강력한 무역제한 조치를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덴마크 총리를 지낸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나토 사무총장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나토만의 위기가 아니라 대서양 공동체 전체의 위기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다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갈등 관리 국면으로 돌아섰다. 그는 이날 “나는 무력 사용을 원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유럽 관세 부과도 철회한다고 밝혔다.
고강도 조치로 ‘충격 요법’을 쓰며 상대를 위협하고, 이후 극단적 조치를 철회하는 ‘타코(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 전략을 다시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 각국과의 상호관세 협상 등에서도 여러 차례 같은 전략을 썼다. 이번에도 유럽 국가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은 다음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는 전략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외적으로는 분열 심화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토 동맹 간 분열이 심화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부담이 작지 않다. 러시아·중국을 함께 견제해온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을 잃을 수 있어서다. 가뜩이나 최근 캐나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미국의 동맹들이 중국과 부쩍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 우려가 나오며 전날 미국 금융시장에서 주가·채권·달러가 ‘트리플 약세’를 보인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각심을 줬을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우리 주식시장이 어제 아이슬란드(그린란드를 잘못 지칭한 것) 때문에 (새해 들어) 첫 하락세를 보였다”며 “아이슬란드(그린란드)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돈이 들게 했다”고 언급했다.
◆유럽, 환영하면서도 경계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이 완전히 봉합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보스포럼에서 한 1시간20분의 연설 중 상당 시간을 미국의 그린란드 확보의 정당성을 설명하며 그린란드를 향한 ‘욕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미국 말고 어떤 나라도 그린란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며 “(그린란드는) 북미 대륙의 일부이며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재차 강조했다.
유럽은 일단 갈등 완화를 환영하면서도 경계를 놓지 않았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뒤 “매우 성공적”이라면서도 “그린란드와 관련한 구체적인 협상은 미국·덴마크·그린란드 간에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우리는 그린란드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이어 “미국이 그린란드를 소유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그것은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이라고 강조했다. 라르스 클링바일 독일 재무장관은 “양측이 대화에 나선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너무 일찍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이날 “미국이 대립 아닌 협력의 길로 돌아올 때까지 무역협정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다음 주 예정된 표결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린란드 현지 민심도 현 상황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그린란드 출신인 아야 켐니츠 덴마크 국회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토는 그린란드를 제외하고 어떤 협상도 할 권리가 없다”며 “나토가 우리나라와 우리 광물에 대해 발언권을 갖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반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