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이 늘어서 괜찮을 줄 알았죠. 그런데 배달도, 매장도 같이 빠졌어요.”
22일 저녁,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 골목. 불이 꺼진 간판이 띄엄띄엄 보였다. 문을 연 가게 안도 한산했다. 이 골목에서 8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47) 씨는 “저녁 장사가 이렇게 조용한 날이 잦아졌다”며 “사람을 한 명 더 쓰는 순간, 그날 장사는 남는 게 없어진다”고 말했다.
매장을 늘리면 매출도 따라오던 공식은 이미 현장에서 깨졌다. “지금은 하나 더 늘리는 순간 적자가 된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매장 수를 늘리고, 인력을 투입해 매출을 키우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인건비, 식자재 가격, 임대료가 동시에 오르면서 “팔수록 손해”라는 말이 공공연해졌다. 업주들 사이에선 요즘 “성장은 꿈 얘기”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당장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더 현실적인 질문이다.
◆“사람부터 줄였다”…가장 먼저 손댄 건 인력
변화는 인력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주방과 홀을 동시에 책임지던 직원이 빠지고, 사장은 더 오래 불 앞에 서게 됐다. 김 씨는 “예전엔 바쁠까 봐 사람을 더 뽑았는데, 지금은 그게 제일 무서운 선택”이라며 “매출이 조금 늘어도 인건비가 다 가져간다”고 했다.
이런 판단은 김 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외식업계 전반에서 인력 감축은 이미 일상이 됐다. 한 자영업자는 “서비스가 나빠질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서비스보다 생존이 먼저”라고 말했다. 한때 ‘사람이 곧 경쟁력’이던 업종에서, 사람은 가장 먼저 줄여야 할 비용이 됐다.
이런 변화는 현장 체감에 그치지 않는다. 숫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국가데이터처 고용동향을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430만명 안팎까지 늘었다.
반면 직원을 둔 자영업자는 줄었다. 인건비 부담에 매출 전망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자영업 현장에선 ‘사람을 늘릴지 말지’가 아니라 ‘어떻게 혼자 버틸지’를 먼저 고민하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영업시간 단축…“열수록 손해라는 말이 실감”
인력이 줄자 영업 방식도 달라졌다. 늦은 밤까지 불을 켜 두던 가게들은 하나둘 셔터를 내린다. 특히 타격이 큰 건 저녁 시간대다. 점심은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은 집에서 먹는 소비 패턴이 퍼지면서 외식업의 핵심 시간이 무너졌다.
마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또 다른 자영업자는 “예전엔 저녁 7~9시가 승부처였는데, 요즘은 그 시간에도 빈 테이블이 많다”며 “괜히 문을 열어두면 인건비와 전기료만 더 나간다”고 말했다. ‘열수록 손해’라는 말이 체감으로 와닿는 순간이다.
더 큰 문제는 버티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말 기준 외식업체 폐업률은 전국적으로 10% 안팎까지 올라섰다. 일부 지역에선 코로나19 유행 시기보다도 수치가 높다.
한 상권 관계자는 “예전엔 폐업 이유를 물으면 임대료 이야기가 먼저 나왔는데, 요즘은 인건비부터 나온다”며 “사람을 쓰면 감당이 안 되고, 안 쓰면 몸이 먼저 망가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배달로 옮겨간 것도 아니었다
외식이 줄면 배달이라도 늘어야 할 것 같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다. 배달 주문도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온다.
한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배달로 전환하면 숨통이 트일 거라 기대했는데, 지금은 매장·배달·포장이 동시에 줄어드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이는 소비가 특정 채널로 이동한 게 아닌 외식 자체를 줄이고 있다는 신호다. 비싸졌다는 인식이 쌓이면서 ‘오늘은 그냥 집에서 먹자’는 선택이 늘었다. 배달 앱을 켜기 전에 가격을 보고 닫아버리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체감이다.
◆흔들리는 좌석 장사…대신 ‘쪼개서 파는’ 전략
이런 상황에서 외식업체들이 택한 선택은 의외로 ‘메뉴 늘리기’다. 좌석 중심 장사가 흔들리자, 한 끼 식사를 여러 상품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메인 메뉴에 사이드, 포장 전용 상품, 반조리 식품까지 한 매장에서 여러 계산이 이뤄지도록 구조를 바꾼 것이다.
서대문구의 한 분식집 사장은 “예전엔 라면 한 그릇이면 끝이었는데, 지금은 냉동 포장, 집에서 끓여 먹는 세트까지 함께 판다”며 “한 번 들어온 손님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사장은 “이제 외식은 분위기가 아니라 계산이 먼저”라고 말했다. 경험을 파는 장사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소비자 태도도 달라졌다. 외식은 더 이상 습관이 아닌 관리해야 할 지출이 됐다. 가격 부담이 큰 시간대와 메뉴는 피하고, 꼭 필요할 때만 선택한다. 외식 빈도는 줄고, 선택 기준은 더 까다로워졌다.
외식업체들이 느끼는 위기의 핵심은 수요 감소보다 비용 압박이다. 조금 팔아도 남지 않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매출이 늘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업계에선 ‘회복’보다 ‘버티기’라는 단어가 더 자주 나온다.
◆“얼마나 키울지가 아닌 얼마나 버티느냐”
외식시장의 반등을 체감했다는 말은 아직 현장에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달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계산하는 가게가 늘었다.
한 자영업자는 “확장 이야기는 이제 농담처럼 들린다”며 “요즘 업주들끼리 모이면 결국 나오는 말은 ‘이번 겨울을 넘길 수 있느냐’뿐”이라고 했다.
한때 배달이 돌파구가 될 거라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골목에 남은 가게들은 대박을 꿈꾸지 않는다. 오늘 불을 켜도 괜찮은지, 내일 인건비를 낼 수 있는지부터 계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