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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탈리아에 구애… 프랑스와는 거리 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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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츠·멜로니, 로마에서 정상회담
경제·군사 분야의 협력 강화에 합의
“독일의 대외 관계에 ‘계급’은 없어”

독일이 이탈리아와의 경제·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나선 가운데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것이 흔히 ‘특수 관계’로 불리는 독일·프랑스 파트너십을 해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독일이 정치적 혼란에 빠진 프랑스를 버리고 이탈리아를 유럽의 새 파트너로 삼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23일(현지시간) 로마에서 정상회담을 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왼쪽)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친밀한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메르츠 총리는 이날 로마를 방문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은 무기 생산을 위한 군수 공업 등 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 두 나라는 정기적인 합동 군사 훈련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1963년 당시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체결한 독·불 화친 조약은 흔히 ‘엘리제 조약’으로 불린다. 이를 통해 양국은 20세기 전반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적으로 싸운 과거사를 뒤로 하고 서로 긴밀히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양국은 유럽연합(EU) 역내 1위, 그리고 2위의 경제 대국으로서 유럽 지역에서 리더십을 확고히 했다. 오늘날 독일의 외교 정책에서 프랑스는 가장 중요한 나라로 꼽힌다.

 

이런 독일이 경제 및 군사 분야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구애(求愛)에 나서자 독일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독일이 요즘 여소야대 정국 아래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 프랑스 대신 정치적·경제적으로 안정된 이탈리아를 새 파트너로 택한 것이란 분석이 나돌 정도다.

 

23일(현지시간) 로마에서 정상회담을 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왼쪽)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양국 간 경제 및 군사 분야 협력에 합의한 뒤 나란히 협정문을 든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메르츠 총리는 이를 의식한 듯 독일·이탈리아 파트너십이 기존 독일과 프랑스 관계를 저해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독일의 대외 관계에 ‘계급제’ 같은 것은 없다”며 “독일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 모든 나라들과의 긴밀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EU라는 틀 안에서 함께 행동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유럽에선 ‘장기적으로 독일·이탈리아 관계가 독일·프랑스 관계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발전할 것’이란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는 메르츠 총리가 보수적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에 속한 점과 무관치 않다. 원래 좌파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가 지금은 중도 성향 여당을 이끌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보다는 강성 보수 정치인으로 ‘극우’란 평가까지 듣는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가 메르츠 총리와 더 잘 통하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얼마 전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 눈이 빨갛게 충혈된 그는 요즘 공식 석상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등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도 독일 외교 정책의 중대한 고려 요인이다. 프랑스는 2024년 하원 총선거에서 여소야대 의회가 출현한 뒤 마크롱 대통령이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상태다. 당장 2026년 들어 어느새 2월이 거의 다 됐는데 아직 올해 예산안조차 처리를 못한 실정이다. EU 역내 2위의 경제 대국인 프랑스의 이 같은 현실은 프랑스 국내는 물론 유로화(貨)를 쓰는 이른바 ‘유로존’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임기가 1년 4개월밖에 남지 않은 마크롱 대통령은 굳이 여소야대 의회가 아니더라도 곧 ‘레임덕’에 빠질 게 뻔하다.

 

반면 2022년 10월 집권한 멜로니 총리는 정치적 기반이 무척 탄탄하다. 2027년 치러질 총선에서도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연립여당이 승리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정치적 안정 덕분에 이탈리아 경제도 순항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