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와 녹색 들판이 어우러진 땅끝. 높이 100m 넘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도는 모습은 ‘기묘(奇妙)’하다. 고대 그리스신화 속 거인 같고, 때론 소설 속 돈키호테가 정신을 잃은 채 달려가는 풍차처럼 보인다.
매년 겨울이면 거르지 않고 방문하는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마주하는 광경이다. ‘천사(1004) 대교’를 지나 섬 깊숙이 들어가면서, 끝없이 펼쳐진 대파밭 사이로 번뜩이는 풍력발전기를 볼 때마다 이처럼 상념이 교차한다. 수백억원을 들인 풍력발전기들은 청정에너지원으로 추앙받는다. 동시에 환경파괴 논란에서 여태 자유롭지 못하다. 대형차가 지나갈 때 나는 윙하는 듯한 소음 탓에 주변 새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옆에 사람이 살 수 없으니 대파밭과 모래사장만 적막하게 곁을 지킬 뿐이다. 최근 녹색연합·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이 정부의 해상풍력법 시행령에 우려를 나타낸 이유다.
장황하게 풍력발전 얘기를 꺼낸 건 최근 불거진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북 새만금 이전론 때문이다. 단초는 전력난이었다. 수도권의 부족한 전력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클러스터 내부에 LNG 열병합발전소를 짓는 방안은 환경단체의 반발로 막혀있다. 소형모듈원전(SMR) 건설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정부의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초고압 직류송전(HVDC) 방식으로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각 8GW의 전력을 공급하도록 했다. 430㎞ 떨어진 신해남 변환소와 190㎞ 떨어진 새만금 변환소에선 해상풍력단지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한다.
하지만 초고압 송전탑이 예정된 지역마다 반발이 거세다. 전자파·자기장이 인체에 미칠 악영향 탓이다. 동해안에서 전력을 끌어와 변환할 경기 하남시 동서울변전소 증설 역시 주민들의 반발로 더딘 모습을 보인다. 이쯤 되면 이재명 대통령이 전력·용수 문제를 들며 “장기적으로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언급한 대목은 충분히 논리적이다. 담당 부처와 장관 지역 정치권이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를 무리하게 전략산업에 투영한 측면을 제외하면 말이다.
‘클러스터(cluster)’. 이 단어의 사전적 뜻은 기업, 연구소 등이 한군데 모여 긴밀한 연결망을 구축해 상승효과를 끌어내는 것이다. 용인지역에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활발하게 반도체고속도로가 건설되는 배경이다.
용인·평택·화성·안성에는 40년 넘게 구축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생태계가 있다. 이를 고려치 않고 정치 논리에 따라 패키지 등 후공정 단지를 전북 새만금이나 영남지역으로 작위적으로 옮기는 건 공급망 붕괴나 인프라 매몰 비용을 간과한 판단일 수 있다. 강제 이전에 따른 대규모 인력 이탈과 기술 경쟁력 급락, 반도체 산업의 속도전 붕괴도 간과하면 안 된다.
제조업·인재육성의 수도권 집중은 경기도나 용인시의 책임은 아니다. 정부 정책의 실패다. 착공 단계에 들어선 전략 자산을 옮기려는 성급한 시도보다 지역 여건에 맞는 새로운 산업의 육성은 어떨까.
정부가 2023년 발표한 국가산단 15곳에는 새만금 인근 완주의 수소산단, 익산의 식품산단이 포함됐다. 물론 고민은 위정자(爲政者)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