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이어받은 이재명정부가 입장을 바꾼 배경에는 안정적이고 충분한 전력 공급 없이는 국정 과제인 ‘인공지능(AI) 3강’ 목표도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큰 점 등 현실론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배출 감축과 AI 대전환 시대를 동시에 이루려면 원자력 발전의 도움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지난해 2월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도입하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확정지었으나 그해 6월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한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이행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새 정부는 윤석열정부 당시 신규 원전에 대한 국민 여론 수렴 절차가 부족했다며, 공론화 절차를 거쳐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다시 결정짓기로 했다. 더욱이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을 건설하는 데 최하 15년이 걸리고 지을 곳도 없다. 지금 SMR은 기술 개발이 안 됐고 당장 AI와 데이터센터로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며 “그 전력을 가장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이 1∼2년이면 되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라고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생각도 대통령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기류가 달라졌다. 코앞에 닥친 AI 대전환 시대에 대비하고 국가 전략 산업인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는 각계의 지적과 요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AI 기반 시설인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제조 공장은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전력이 공급돼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기후 상태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24시간 전력 생산이 가능하지만, 기후위기 주범인 탄소를 대량 배출한다. 국민 여론도 원전 건설 찬성 쪽으로 기울자 정부도 입장을 선회했다. 김 장관은 지난 7일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토론회에서 “한국은 반도체 등 중요한 산업을 많이 갖고 있어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마음 같아선 전체 전력을 재생에너지로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을 고려할 때 그렇게 하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이 대통령도 21일 신년기자회견서 “필요하면 안전 문제를 포함해서 (원전 신설을) 검토할 수 있다”며 “마치 (원전이) 이념 전쟁의 도구처럼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내놨다.
결국 탄소 감축과 AI 대전환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이재명정부 역시 현실적 대안으로 무탄소 발전원인 원전 건설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신규 원전 건설은) 지난해 2월에 이미 결정이 났던 건인데 새 정부가 미온적이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갔던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상화하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신규 원전 건설 절차는 부지 공모 절차부터 시작한다. 담당 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조만간 부지 공모에 나설 방침이다. 각 지자체로부터 공모를 받은 뒤 5∼6개월간의 부지평가와 선정 과정을 거친다. 부지가 확정 나면 2030년대 초 건설 허가를 획득, 착공에 돌입한다. 2037년에 1기를 완공할 계획이다. 2038년 나머지 1기가 지어지면 11차 전기본상 신규 원전 건설이 끝이 난다.
하지만 학계와 원전업계 일각에선 시간이 빠듯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차 전기본상 대형 원전 건설 기간은 13년11개월이다. 이를 고려하면 지금 바로 부지가 선정된다고 하더라도 계획에 맞춰 준공하기 힘들다.
건설 기간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보관소, 고압 송전망이 설치될 부지에 사는 지역민 반발도 무마해야 한다. 김 장관은 “과거보단 (원전) 신청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졌다”며 “지역 주민의 찬성 여론을 반영해 부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초고압 송전망 설치에 대해선 “최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송전망 정책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