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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바다 건너 우주로 나아가는… 서른일곱 ‘청춘의 세계’ [창간37-축시·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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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더 넓은 바다 저편으로

-세계일보 창간 37주년에 부쳐

 

김정수

 

서른일곱 살 그대는 아직
연어처럼 회귀할 때가 아니다
1989년 애천·애인·애국의 깃발 내걸고
동해 일출, 그 환한 빛으로
손과 발, 얼굴을 씻고는 울릉도
독도의 동쪽 바다 오호츠크해 지나
세계, 그 넓은 바다를 향하여
힘차게 힘차게 출항하지 않았던가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
무시로 옆구리 치고 들어오는 풍랑과
크고 작은 강에서 밀려드는 탁류와
급변하는 바다의 수온을 마주했으리라
그래도 항상 가던 편한 항로 대신
아무도 가지 않은 험로를 택했으리라 아직은
세찬 파고 헤쳐나갈 청춘 아니던가

대륙과 대륙 사이 베링해 건너
바다사자나 혹등고래 떼 마주치거든
회피하거나 물러서지 말고 당당히 나아가라
무모하게 맞서지 말고 타협하라는
때론 우회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한 발 뒤로 물러나 후일을 도모하라는
달콤한 유혹 단호히 뿌리쳐라
출혈이 있더라도 위대한 행진 멈추지 마라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진 사명 아니더냐

그리 세상에 균열을 내고 흔들어대는 것도
그대가 해야 할 일 아니더냐

서른일곱 젊디젊은 그대여
앞만 바라보고 전진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으리라
그러면 잠시 멈춰서서 자신을 돌아보라
출항의 초심 잃지는 않았는지
발밑의 작은 생명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스치는 아름다운 섬에 곁눈질하지는 않았는지
속도에 취해 본분을 잊지는 않았는지
허공을 나는 새 부러워하지는 않았는지
불혹 이전에 흐트러진 마음 드잡고
이제는 다음을 준비할 일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보라
그대가 서 있는 위치와 온몸으로 체득한 무늬들
새로이 새기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라
눈에 보이는 뻔한 세상에서 벗어나
별의 바탕인 어둠 저편 미지의
세계 가만히 그려보라 몸은 여기 있되
우주, 그 너머에 시선 머물게 하라
꿈꾸는 자만이 참다운 말을 지배하리라
서른일곱 울울창창한 그대여

 

●김정수 시인은... 1963년 경기 안성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 등을 발표했고, 평론집 ‘연민의 시학’, 디카시집(e-book) ‘퀘렌시아’ 등을 출간했다. 2015년 제28회 경희문학상과 2024년 제9회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경향신문과 머니투데이 등에 ‘詩想과 세상’, ‘시인의 집’ 등을 연재했으며, 현재 시와 더불어 시집 해설과 신작 시집 서평 등을 쓰고 있다.

 

움직이는 내일(125×164㎝) 푸른 해수면에 뿌리 내린 수많은 나뭇가지마다 흰 천이 매여, 거센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낸다. 위태로운 풍경 속에서도 천은 유연하면서도 강인하게 너울거리며, 항해를 앞둔 배의 돛처럼 부풀어 오른다. ‘움직이는 내일’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삶의 경험을 시각화했다. ‘어제’는 과거의 땅, 즉 이미 지나간 경험이 조용히 쌓여 있는 자리를 의미하며, ‘오늘’은 현재의 순간, 즉 물과 하늘의 사이 공간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적 풍경으로 형상화된다. 한편 ‘내일’이 지시하는 미래의 땅은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지의 장소를 묘사한다. 다가올 바람이 불러올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예비하는 희망적인 시공간이다.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사진 콜라주 기법을 통해 제작됐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포착된 각각의 요소들은 하나의 화면 위에서 관계 맺으며 비현실적 풍경을 자아내고, 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획득한다. 섬세하게 구축된 화면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감각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원성원 작가는... 원성원은 현실과 공상이 뒤섞인 독특하고 섬세한 사진 콜라주 작업을 진행해 왔다. 작가의 사진은 디지털 작업이긴 하나 일일이 공간과 대상을 촬영한 후 이를 섬세하게 중첩시켜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 소스들을 합성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이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레이어가 만들어 내는 작가의 사진은 분명한 시각 이미지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이야기이며 작가의 남다른 상상력으로 공간과 인물을 흥미롭게 병치시킨다. 이를 통해 허구적 세계 속 새로운 내러티브를 빚어낸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쾰른미디어예술대학을 졸업했다. 2025년 동강사진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