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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그린란드서 열린 기후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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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군이 채취한 빙하 코어
10만년 걸친 기후 변화상 담겨
단기간 급격한 온도 변화 확인
현대 기후학 패러다임 달라져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한 과학자 무덤이 있다. 알프레트 베게너. 1930년 11월 그린란드 탐사 중 사망했다. 베게너는 대륙이동설을 주장했던 독일 과학자다. 과거 한때 대륙들이 한 덩어리였던 ‘초대륙’이 있었고, 초대륙이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쪼개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대륙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대륙들은 여전히 바다 위를 이동, 혹은 표류하고 있다는 게 대륙이동설이다.

베게너가 그린란드에 간 이유는 뭘까? 그의 과학자로서의 제1 정체성은 알고 보니 기상학자다. 베를린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분야 연구를 했는데, 과학에 가장 큰 기여는 대륙이동설이나, 그는 무엇보다 기후과학자였다. 그래서 그는 혹한의 땅 그린란드로 향했고, 1906년부터 한두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찾았다. 그린란드 빙하의 두께와 북극 기후를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게 당시 탐사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독일 탐사대 대장으로 일하던 네 번째 탐사 중 그린란드섬 중앙에 있는 기지(아이스미테)에 식량 공급을 위해 강행군을 하다가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그의 시신은 다음 해 5월 동료들에게 발견됐고, 현장의 빙하에 매장됐다. 그린란드의 80% 이상을 덮고 있는 ‘대륙 빙하’의 일부가 되었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베게너 이후 기후과학자들이 그린란드에서 고(古)기후 연구 기회를 잡은 건 1970년대다.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이 격화하면서 그린란드 서부 내륙지역에 군사 기지를 세웠다. 해안에서 100마일(약 16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기지 이름이 ‘캠프 센추리’였다. 미 육군은 빙하를 파고 들어가 내부에 거대한 터널을 만들었고, 터널 길이는 3.2㎞에 달했다. 공사는 1959년 6월에 시작했고, 1960년 10월에 끝났다. 표면으로는 과학 연구를 위한 과학기지를 내세웠으나, ‘캠프 센추리’는 핵탄두 600기를 배치하는 게 목적이었다. 기지는 곧 폐쇄됐다. 대륙 빙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캠프 센추리 기지는 균열이 생겼고 이어 붕괴되었다. 1931년에 얼음에 묻힌 베게너의 무덤 역시 위치가 달라지고 있다.

미 육군의 작전 실패 사례로 남았을 뿐인 캠프 센추리를 우리의 시선 이내로 들어오게 한 건 과학자들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고기후과학자는 그들이 간절히 찾던 증거를 발견했다. 미군이 기지 구축 때 채취했던 빙하 코어를 갖고 고기후를 연구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거다. 미국 뉴햄프셔에 있던 한랭지공학연구소(CRREL)는 핵미사일 기지 건설을 위한 지질 조사를 위해 대륙 빙하를 뚫은 바 있다. 1961년에 드릴을 갖고 시추를 시작해서 1966년 7월에는 빙하가 땅과 만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때 바닥까지 내려가며 캐낸 빙하 코어는 뉴햄프셔 연구소로 갔고, 보관됐다. 아무도 빙하 코어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덴마크의 빌리 단스고르(1922∼2011)가 빙하 코어를 이용한 연구를 제안한 최초의 고기후학자였다. 이렇게 해서 그린란드 빙하 코어 샘플은 고기후를 담고 있는 타임캡슐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길이 1387m의 캠프 센추리 빙하 코어는 10만년에 걸친 기후 변화 기록을 담고 있었다. 현재와 가까운 시간대의 빙하 코어는 길고, 오래될수록 눌려 압축된 빙하 코어가 오래된 과거의 기후 정보를 담고 있었다. 단스고르가 이용한 방법은 산소동위원소 농도 비율이었다. 산소 16과 산소 18의 비율은 오래된 기온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고 온도계’였다.

단스고르는 빙하 코어 샘플 연구를 통해 과거 기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급격하게 변한다는 걸 알아냈다. 과거 기후는 수십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기온이 8~15℃ 급등했다가 서서히 식는 현상이 반복했다. 이전까지 과학계는 기후 변화가 수천 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고 믿었으나, 기후는 한 사람의 생애 주기 내에서도 급격히 변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현대 기후학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그런 고기후 연구의 출발점, 그린란드가 국제정치로 요동치고 있다. 기후 변화로 그린란드 대륙 빙하가 녹고 있기에 일어난, 기후 변화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