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취업 과정에서 이력서라는 정해진 칸 안에 자신의 삶을 요약해 넣느라 고심해 본 경험이 있다. 출신 학교, 전공, 학점, 어학 점수 등 수치화된 데이터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이력서의 시대. 지난 수십 년간 채용 시장의 절대적인 표준으로 군림해온 이 양식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29일 개최한 컨퍼런스 ‘JOBKOREA THE REBOOT’에서 파격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윤현준 대표이사는 “이력서 해체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공급자 중심의 정형화된 문서를 넘어 인공지능(AI)이 개인의 역량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커리어 게놈(Career Genome)’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윤 대표는 학생 시절 IBM 지원을 위해 학과 사무실에서 종이 지원서를 받아 수기로 작성하고 등기 우편으로 보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이력서는 사람을 위해 사람이 만들어놓은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기존 이력서는 수많은 지원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규격화된 양식과 정규화된 코드를 강요한다면서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채용 시장으로 무대를 옮긴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었어도 종이에서 데이터베이스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본질적인 한계는 그대로였다. 구직자는 자신의 삶과 잠재력을 텍스트 안에 박제해야 했고, 기업도 행간에 숨겨진 맥락을 파악하느라 적잖은 비용과 시간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이력서는 과거를 확인하는 용도에 그쳤다. 어떤 전공을 했고 어떤 경력을 쌓았는지 정보를 나열할 뿐, 그 정보가 기업이 추구하는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는 사람이 개입해 주관으로 판단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불확실성의 오류는 HR(인적자원) 업계에서 화두인 ‘미스매칭’의 원인이 됐고, 이는 곧 조기 퇴사와 같은 ‘채용 실패’로 이어졌다. 채용 실패는 다시 사람을 뽑고 교육하며 업무에 적응시키는 과정에서의 막대한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
잡코리아가 제시한 ‘커리어 게놈’은 이러한 미스매칭 한계를 극복할 강력한 돌파구로 보인다. 생명 설계도인 유전자 정보처럼 개인의 역량, 가치관, 행동 패턴, 그리고 텍스트 뒤에 숨은 의도와 간절함까지 잘게 쪼개어 분석하는 다이나믹 디지털 프로필이다.
핵심 기술은 거대 언어 모델(LLM)과 추론 엔진을 결합한 ‘컨텍스트 링크’다. 학력과 같은 정량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정성적 데이터를 다차원 벡터로 변환한다. AI가 단순한 단어 매칭을 넘어 데이터 사이의 거리와 가중치를 계산해 구직자의 서사를 맥락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다.
혁신의 첫걸음이자 구체적인 실현 도구는 잡코리아가 올해 선보일 ‘AI 에이전트’ 서비스다. AI 에이전트는 구직자와 기업 사이에서 단순한 정보 중개인을 넘어 개인의 커리어 게놈을 상시 관리하고 최적의 기회를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고도화된 비서 역할을 수행한다. 윤 대표는 네 가지 핵심 혁신 서비스를 제시했다.
‘스마트픽’은 커리어 링크 알고리즘으로 공고에 가장 유효한 관심을 보일 인재에게만 내용을 노출한다. 인사 담당자를 위한 ‘탈렌트 에이전트’는 기업의 상황과 공고 이력, 지원자 데이터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며, 구직자를 위한 ‘커리어 서비스’는 개인의 역량을 분석해 최적의 기회를 제안한다. 고용 형태나 국적에 상관없이 공고 등록부터 지원자 관리, 인재 검색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통합 관리 환경인 ‘하이어링 센터’로 채용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잡코리아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사명인 ‘웍스피어(Worxphere)’도 공개했다. ‘일(Work)’, ‘경험(Experience)’, ‘영역(Sphere)’을 결합한 이름으로, 일하는 모두를 위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단순히 일자리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넘어 일과 관련된 모든 경험을 AI와 데이터로 재설계하고 새로운 일의 문화와 생태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선언이다. 윤 대표는 지난 30년간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정진하고 혁신하여 HR 담당자들이 더욱 경쟁력 있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I가 채용의 문법을 바꾸는 시대에 HR 담당자들은 기술을 수용하면서도 인간의 고유한 영역을 재정의하는 균형 잡힌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었다.
김성준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는 발표에서 AI를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일하는 방식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용 기술’로 정의하고 HR의 능동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AI가 지능을 압축하고 스스로를 개선하는 시대에 HR은 직무 매칭을 넘어 인간만의 창조적 통찰과 감정적 신뢰, 윤리적 판단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강조했다. 이와 함께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는 조직 차원의 가버넌스 구축이 HR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