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을 바라보는 외할아버지께서 제미나이를 활용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공지능(AI)을 사용하는 일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나 역시 이제는 AI 없이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업무 효율은 분명히 높아졌고, AI와 대화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과거에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자동화 업무까지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일하면서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이런 흐름 속에 올해부터 기자 친구들과 ‘삽질하며 배우는 AI 글쓰기’라는 스터디도 시작했다. 스터디명은 글쓰기지만, 실제로는 데이터 리서치·분석·시각화 등 업무 전반을 어떻게 더 효율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모임이다. 스터디원들이 각자 하나씩 생성형 AI를 맡아, 서로 업무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공유한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AI 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꽤 유용하다.
내 담당은 미국 기업 앤트로픽이 개발한 ‘클로드’다. 챗GPT보다 긴 맥락을 이해하고 신중하게 답하는 AI로 알려져 있다. 스터디를 한 달 하니 리서치나 발제 외에 이제 뚜렷한 활용법이 더는 떠오르지 않아 링크트인과 유튜브를 뒤져봤지만, 돌아오는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했다. 취재 기획 단계 활용, 인터뷰 질문지 작성 같은 것들. 그러다 문득 클로드에게 직접 물었다. “이 상황에서 너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클로드와 대화가 이어졌다. 이미 반복 업무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했고, 그렇다면 네가 더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그때 클로드가 이렇게 답했다. “교정·교열·정보 수집까지 이미 자동화하셨다면, 정말 AI가 더 필요한 상황인가요? 오히려 지금은 AI 없이 온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이 틀렸나요?”
뼈 아픈 말이었다. 일종의 팩트 폭력이었다. 우리는 과연 AI를 제대로, 잘 활용하고 있는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AI 기술은 직군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의 업무방식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속도와 방식은 제각각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각자 알아서 대응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톰슨 로이터 재단이 2024년 언론인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뉴스룸의 79.3%는 AI 사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정책도, 체계적인 교육 기회도 부족한 상황에서 많은 언론인이 스스로 AI를 공부하고 있었다. 이는 비단 언론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생성형 AI 모델의 급속한 개발과 배포가 전력 수요와 물 소비량 증가라는 결과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녹색전환연구소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환경 영향을 분석한 결과, 초거대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인 국내 5개 기업의 2024년 지역 기반(스코프2) 총배출량은 99만t으로,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는 데이터센터의 지역 기반 배출량이 각각 50.8%, 99.4%나 늘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정확히는, 우리는 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 기후 저널리즘 네트워크는 이 지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를 내놓았다. 오픈소스 미디어 분석 플랫폼 ‘미디어 클라우드’를 활용해 1600개 이상의 영어권 뉴스 매체를 분석한 결과다. 2025년 3%대에 머물던 AI 관련 보도 비중은 같은 해 12월 10%까지 확대됐다. 반면, 기후변화를 언급하는 보도는 1%대에 머물렀고 그 비중마저 감소하는 흐름을 보였다. 더 주목할 대목은 ‘AI’와 ‘기후변화’를 동시에 언급한 기사였다. 두 키워드를 모두 포함한 기사는 전체의 0.06%에 불과했다. 이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언론 역시 AI와 기후의 연결고리를 구조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모두 사용설명서 없이, 방향을 점검할 여유도 없이 이 거대한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