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찰스 킹/ 고광열 옮김/ 사계절/ 2만9800원
흑해는 유럽 동남부와 서아시아 사이에 있는 바다다. 튀르키예·우크라이나·러시아·불가리아·루마니아·조지아 6개국이 연안을 공유한다. 동유럽과 유라시아 지역 연구 권위자인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찰스 킹의 저작 ‘흑해’는 이 일대의 2700여년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낸 포괄적 역사서다.
책은 흑해를 문명 충돌의 경계선이 아닌 종교 공동체, 언어 집단, 제국들을 연결해온 다리로 해석한다. 저자는 육지 중심 정치지리 관점을 택하는 대신, 흑해를 독자적 실체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그는 말한다. “역사와 사회 연구에는 육지 중심의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 그러나 대양과 바다, 강들은 단순히 통로나 경계가 아니라 인간의 상호작용과 교류라는 독특한 이야기들의 핵심 주역으로서 자기만의 역사가 있다.”
저자는 여러 민족과 문명 사이에 그어진 ‘국민국가’ 같은 고정된 경계선에 의존하지 않는다. 각 장의 제목을, 당시 흑해 지역을 지배한 세력의 언어로 표기한 것만 보아도 이 점이 명확하다. 시대마다 흑해는 다양한 문명권의 중심 무대였으며 민족과 언어, 종교가 끊임없이 뒤섞이고 정체성이 중첩되는 장소였다.
기원전 7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를 다룬 2장 ‘폰투스 에욱시누스(Pontus Euxinus)’는 라틴어로 ‘환대하는 바다’를 의미한다. 3장 ‘마레 마조레(Mare Maggiore)’는 이탈리아어로 ‘큰 바다’를 뜻한다. 500∼1500년 비잔티움제국과 제노바·베네치아 상인들이 활약하던 중세 시대를 조명한다.
4장 ‘카라 데니즈(kara Deniz)’는 튀르크어로 ‘검은 또는 어두운 바다’를 의미하며, 오스만제국이 흑해를 장악하고 노예 무역이 번성한 1500∼1700년을 다룬다. 5장 ‘초르노예 모레(Chernoe More)’는 러시아어로 ‘검은 바다’를 뜻하며, 제국이 남진 정책을 통해 오스만을 밀어내고 오데사를 건설하며 흑해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한 1700∼1860년을 그린다.
6장의 제목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표현 ‘흑해(Black sea)’. 증기선과 철도, 석유와 곡물 수출로 국제화가 진행된 근대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소련 해체까지를 포괄한다. 책은 탈냉전 이후 흑해의 미래를 전망하는 7장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의 원서는 2004년 출간됐다. 이후에도 흑해를 둘러싼 격동은 계속됐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지역의 군사·전략적 균형을 흔들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가스관을 통한 유럽 에너지 공급, 곡물 해상 운송, 군사적 긴장을 포함한 중대한 국제 현안이 모두 흑해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여파는 곧바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식량 가격 및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다. ‘흑해’는 이 지역의 복잡한 현실에 접근하는 참고서라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