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9일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법안 91건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말부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정국이 이어지며 여야가 합의했음에도 처리되지 못한 민생법안이 다수 포함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법안 처리 시점이 너무 늦다”는 지적이 나온 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반발하던 쟁점법안 처리를 미루고, 국민의힘은 ‘전 법안 필리버스터’ 방침을 철회하며 양측 모두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1일 1법안 처리’ 끝났다
국회 본회의를 넘은 법안들은 일명 ‘필리버스터법 개선법’으로 불렸던 국회법 일부개정안을 제외하면 다수가 민생법안이다. 학교 급식종사자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취지로 1인당 적정 식수인원 기준을 마련한 학교급식법 일부개정안이 급식노동자들의 오랜 기다림 끝에 통과됐다. 공휴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도 처리하면서 현재 국경일 중 유일하게 공휴일에서 제외된 제헌절(7월 17일)도 공휴일로 지정됐다.
본회의 처리 법안 중 가장 주목받는 민생법안은 반도체특별법(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정하고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실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전력·용수·도로망 등 산업기반시설을 설치, 확충하며 예비타당성조사(예타)나 인허가가 필요한 경우 특례를 규정하기로 했다. 다만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을 대상으로 논의됐던 주 52시간제 제외는 이번 개정안에서 빠졌다.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처리하기로 했었으나, 사법개혁안을 둘러싼 양측 극한 대치로 처리가 계속 미뤄져 왔다.
이외 다수 민생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국립대병원 설치법은 국립대(치과)병원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의과대학 교육기관으로서 국립대병원의 자율성을 법률에 명시한 것이 핵심이다. 이번 개정은 이재명정부 국정과제인 지역격차 해소,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노동 분야에서는 안전보건 공시제, 단기 육아휴직 등이 새롭게 도입됐다. 안건보건공시제는 산업재해 발생 현황, 안전보건 투자 등 관련 내용을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의무 공시토록 하는 제도이며 단기 육아휴직은 연간 1회 1주 단위로 최대 2주까지 쓸 수 있는 육아휴직제도다.
◆與 “尹정부 실종된 정치 되살린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예고하며 막아섰던 국회법 개정안은 야당이 민감한 부분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할 당시 필리버스터 진행을 국회의장이 지정하는 의원이 할 수 있도록 하고, 필리버스터 중 본회의장에 있는 의원 수가 재적의원 5분의 1에 미치지 못하면 회의 중지가 가능한 안이었다. 조국혁신당 내에서도 회의 중지 가능 방식에 이견을 보였다. 여야는 전날 협의를 통해 기존 법안을 수정, 이날 본회의에 수정안을 상정했다. 민주당 천준호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무제한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사회권자 범위를 의장이 지정하는 의원에서 의장이 지정하는 부의장 및 상임위원장으로 수정한다”며 그밖에 의사정족수 미충족 시 회의를 정회하거나 무기명 투표를 원칙적으로 전자 투표로 진행한다는 내용은 모두 삭제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한발 물러선 셈이다.
민주당은 한병도 원내대표가 들어선 후 입법 속도전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이는 집권여당 힘이 가장 강할 때인 정부 1년 차 입법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내부 판단과도 연관돼 있다. 한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 간 만찬에서 “원내대표 취임 후 입법 상황을 점검해보니 개원 후 20개월 지점을 기준으로 22대 국회 입법 통과율은 20.2%였다”며 “21대 국회의 24.5%, 20대 국회의 29.2%에 비해 최저를 기록하고 있어 국민께 죄송하고 걱정이 앞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민생법안 중엔 전문가 사실조사(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한 상생협력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입장권 등 부정판매 금지행위 범위를 확대한 공연법, 산업재해 경감을 위한 제도들을 도입한 산업안전보건법, 전기차 배터리 안전기준을 강화한 자동차관리법 등 민주당이 지난해 8월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법안 중 일부가 처리됐다.
민주당 김한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정책조정회의에서 “지난 윤석열정부에서 완전히 실종됐던 정치 역할을 되살리는 계기로 삼겠다”며 “대화, 타협, 협상과 조율로 경제 성장과 민생 회복에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