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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헌법연구관 출신 첫 헌재 사무차장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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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출범한 헌법재판소는 이듬해인 1989년 헌법연구관 채용을 개시했다. 헌재소장을 비롯한 9명의 재판관을 보좌할 전문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재판연구관, 대검찰청에 검찰연구관이 각각 있는 것과 유사하다. 초창기 헌재는 헌법연구관 대부분을 법원 및 검찰에서 파견한 현직 판검사로 충원했다. 이들은 일정 기간 헌재에서 근무한 뒤 ‘친정’인 법원 또는 검찰로 복귀해야 하는 만큼 헌법 연구 심화, 더 나아가 헌재 발전에 도움이 안 될 것이란 시선도 없지 않았다. 다만 법원과 검찰은 서로를 의식해 저마다 최고 ‘에이스’로 꼽히는 판검사를 뽑아 헌재 파견을 보내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물론 판검사 경력이 전혀 없는 헌법연구관도 있었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과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이 대표적이다. 원래 행정고시에 붙어 법제처에서 근무하던 이 위원장은 사시(27회) 합격 후 진로를 틀어 1989년 헌법연구관이 된 뒤 1994년까지 오래 근무했다. 그 뒤 변호사로 활동하며 시민운동가로 명성을 얻었고 이명박정부 시절 법제처장도 지냈다. 정 원장은 사시(24회) 합격자로는 드물게 예비 법조인 시절부터 헌법 연구에 전념해 헌법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1989년 헌법연구관으로 임용돼 1992년까지 일하고 대학 교수로 옮겨 헌법을 가르쳤다. 박근혜정부 시절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했다.

 

40년 가까운 헌재 역사상 헌재소장과 재판관은 거의 다 전직 판검사들이었다. 어디 재판관뿐인가. 헌재 예산, 행정 등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장관급)과 사무차장(차관급) 또한 사정은 비슷했다. 처장 및 차장에 대한 인사권을 지닌 헌재소장이 법원 또는 검찰 출신인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작 헌재에 오래 근무해 헌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아는 헌법연구관이 차관급 이상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많은 헌법연구관이 헌재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기회만 되면 대학 교수 등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그 때문이다. 헌법재판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현실에 비춰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지성수 신임 헌법재판소 사무차장(차관급). 헌재 사무차장은 사무처장(장관급)을 보좌해 헌재의 예산, 행정 등 업무를 총괄한다. 뉴시스

김상환 헌재소장이 지난 30일 공석인 사무차장 자리에 지성수(60)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임명했다. 지 신임 차장은 1996년 제38회 사시 합격 후 사법연수원(28기)을 거쳐 1999년 헌재 헌법연구관보로 임용됐다. 공직 입문 이래 30년 가까이 오로지 헌재에만 몸담은 셈이다. 2대 김용준(1994∼2000년 재임)부터 현 9대 김상환(2025년∼ )까지 8명의 헌재소장을 겪었으니 헌재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하겠다. 법원이나 검찰 재직 경력 없이 헌법연구관으로 시작해 사무차장이란 고위직에까지 오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헌재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고 법학 박사로서 전문성도 갖춘 지 차장이 헌재 사무처 ‘2인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