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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칼럼]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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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문명사적 대전환기
핵심 동력은 소통 통한 협력
나만이 옳다는 고집 버리면
독선 막고 조직 경쟁력 강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원활한 소통이 얼마나 대단한 문제해결 방안인지를 보여주는 조상들의 지혜다. 하지만 이 간단한 진리가 무색하게도, 우리 사회는 소통 부족으로 인한 갈등과 효율저하라는 몸살을 앓고 있다.

요즘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로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이 빨리 바뀌고 있다.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문명사적 대전환기로도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대전환기마다 기민하게 대응한 국가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며 도약해 왔다. 이 결정적 시기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야 하며, 그 핵심 동력은 단연 ‘소통을 통한 협력’이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소통(疏通)’은 다분히 인문학적 용어인데, 공학에서는 ‘임피던스(부하, load) 매칭(정합)’에 대응될 수 있다. 필자가 대학에서 시변(時變) 전자장을 다루는 전자기학을 다년간 강의했는데 여기에 임피던스 매칭이 나온다. 신호원과 부하 사이의 임피던스가 매칭되면 신호의 전력 전달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고, 이는 신호가 반사 없이 잘 전달됨을 의미한다. 일례로 쉽게 말하자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서로의 메시지가 거부감 없이 전달되면 임피던스 매칭이 잘된 것이다.

결국,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서로의 임피던스를 최대한 잘 맞추는 것이며, 이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겸손하고 정중하게 대하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도록 노력하면 된다.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한편 단순히 대화를 넘어 소통을 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대개 우리는 소통에서 내 생각만이 옳다는 자세를 갖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고통이 따르고 에너지만 소모할 뿐 얻을 것이 없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둘 때 서로의 임피던스가 같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생산적인 소통이 될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을 지도할 때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건 안 돼’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말을 가끔 한다. 그럴 때 학생들은 사고의 장벽을 깨고 더 깊이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한편, 과거 나의 경험 등으로 얻은 지식이 환경이 바뀐 현재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도 있고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도 있다. 이때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 반복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있다. 스웨덴 출신의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지은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태국 스승인 아잔 자야사로가 한 말이다. 이 가르침은 우리의 마음에 평정을 유지하면서 소통을 잘할 수 있게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자세는 독선을 막고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조직을 지키는 우군이 될 것이다.

AI 대전환 시대에는 개인 사이, 조직과 기관 등의 안팎에 놓인 보이지 않는 장벽을 소통으로 낮추거나 허물고 진정한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컨대 정부 부처 간 장벽을 허물면 중복도 줄이면서 생산적인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 대학과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경험이지만 뭔가 새롭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우리 그것 다 안다’거나 ‘다 생각해 봤다’ 등의 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좋은 정보를 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거만함이나 과도한 우월감은 결국 개인과 조직에 해를 끼친다. 이는 개인의 성향일 수 있지만 조직의 잘못된 문화에 기인할 수 있다. 고쳐야 한다. 소통을 잘하면 진정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깊은 내공을 가진 분의 통찰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상호 이익을 위해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AI가 판을 흔들어 놓고 있는 시대, 우리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를 혁신적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자기학이라는 자연과학이 가르쳐준 임피던스 매칭의 효과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임피던스 매칭(원활한 소통)은 시스템 성능(대한민국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향상(혁신)한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