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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기억과 추억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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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졸업한 초등학교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는데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이 바뀌었다. 교문 현판이 전부 한글로 바뀐 게 나는 좋았다. 어두운 초록색 현판에 황금색 글자로 쓰인 國民學校(국민학교)는 어느 글자든 딱딱하고 무거웠다. 월요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전체 조회를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가 제창이 생활이던 시절이었다.

학교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래서일까, 권위적이고 고집스러운 선생님과 학생들이 충돌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6반에서 선생님이 누구 따귀를 때렸대, 10반 누군가 수업 시간에 소리를 질렀대. 그런 식의 소문들이 귓속말과 다급히 접은 쪽지의 형태로 돌아다녔다. 나는 선생님들을 무서워하는 쪽이었다. 가능한 한 멀리 피해 다녔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손바닥만큼 커다란 학년 이름표가 하필이면 주황색이라 눈에 잘 띄는 것을 원망하며 어깨를 움츠린 채 다녔다.

그런 내게도 선생님과 손을 맞잡았던 기억이 있다.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날이었다. 학교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에게 그 언덕은 꽤 길고 가팔랐다. 오른쪽에는 벽이, 왼쪽에는 텅 빈 길이 전부라 마땅히 잡고 걸을 만한 것도 없었다. 눈이 내리면 언덕길은 금세 얼어붙어 반들반들해졌다. 그 길에 선생님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말뚝처럼 섰다. 귀마개와 목도리, 두꺼운 장갑 같은 걸 끼고 있어도 시뻘겋게 언 코와 뺨은 잘 숨겨지지 않았다.

고학년은 빙판 위에 뿌려둔 모래와 연탄재를 밟고 곧잘 올라갔지만 저학년은 미끄러지거나 나동그라지기 일쑤였다. 도시락과 교과서가 든 무거운 책가방과 손에 쥔 신발주머니만으로도 버거운 걸음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재빨리 일으켜 옷을 털어주었다. 못 걷는 아이의 뒤를 밀어주거나, 아예 손을 잡고 교문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나는 잘 넘어지는 아이였으므로 불쑥 나타난 선생님의 손이 나를 단단히 붙잡을 때 깊이 안도했다. 그때만큼은 선생님이 무섭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나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몸을 기댄 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면 선생님은 틀림없이 온몸을 써 나를 일으켜주었다.

한번은 선생님들이 우르르 넘어지는 바람에 언덕이 아수라장이 된 일이 있었다. 누가 시작이었는지 모르지만 언덕 위 모두가 볼링핀처럼 쓰러져 이리저리 굴렀다. 교문 옆에 바투 붙어있던 선생님들이 언덕 아래로 밧줄을 하나 늘어뜨렸다. 반 대항 줄다리기를 할 때 쓰던 두껍고 기다란 밧줄이었다. 밧줄을 잡고 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하나 둘 일으키는 모습을 나는 건너편 문방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준비물인 수수깡을 어떻게 부러뜨리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오랜만에 간 학교에는 언덕길을 따라 튼튼한 철제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다. 오늘의 아이들은 이걸 잡고 등교하겠구나. 나는 둥글고 차가운 울타리를 가만 잡아보았다. 그 선생님들은 대체 몇 시에 출근해 삽으로 눈을 걷어내고, 긴 언덕길을 따라 연탄재와 모래를 뿌려댔을까.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서서 아이들을 기다렸을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하면서 말이다.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