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첫 거래일이었던 지난 2일,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켜기가 두려웠다는 투자자분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우려했던 ‘검은 월요일’이 현실이 됐습니다. 밤사이 미국에서 날아온 비보에 국내 은(Silver) 관련 파생상품들이 그야말로 초토화됐는데요.
인생 역전을 꿈꾸며 ‘레버리지(2배)’에 올라탔던 개인 투자자들은 하루 만에 자산의 60%가 녹아내리는 참사를 목격해야 했습니다. “전광판이 고장 난 줄 알았다”는 비명이 쏟아졌던 여의도 증권가의 긴박했던, 그 내막을 들여다봤습니다.
◆매도 버튼도 안 먹혔다…‘하한가 감옥’ 갇힌 개미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 국내 증시에서 은 관련 주는 말 그대로 ‘전멸’했다. 삼성·미래에셋 등 주요 운용사의 ‘레버리지 은 선물 ETN(상장지수증권)’ 7개 종목은 장 시작과 동시에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시초가가 곧 종가였다.
문제는 하락 폭이 아니었다. 거래 자체가 실종된 ‘수급 절벽’이 투자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기초자산인 국제 은 가격이 30% 넘게 폭락하자, 이를 2배로 추종하는 상품들은 이론상 -60%가 확정된 상태로 장을 시작했다. 받아줄 매수세가 없다 보니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이른바 ‘하한가 감옥’에 갇힌 셈이다.
여의도의 한 대형 증권사 프랍트레이더는 “오전 9시 땡 하자마자 하한가 매도 물량만 수백만 주가 쌓였다”며 “사실상 탈출구가 봉쇄된 상태에서, 신용 미수(빚내서 투자)를 쓴 계좌들은 장 마감 후 반대매매가 확정되며 ‘깡통’을 찼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반 ETF인 ‘KODEX 은선물(H)’조차 29.8% 폭락하며 하한가 문을 닫았다.
◆‘매파’ 워시 등판…1조원 태운 불나방들의 최후
이번 사태의 뇌관은 미국 연준(Fed) 차기 의장 지명이었다. 케빈 워시 전 이사가 지명됐다는 소식은 시장에 ‘긴축 발작’을 일으켰다. 달러 인덱스가 97선을 뚫고 솟구치자, 달러의 대체재인 귀금속 시장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더 뼈아픈 건 타이밍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 1월 한 달간 은 하락에 베팅하기보다 상승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상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개인의 은 선물 ETN 순매수 규모는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은 가격이 온스당 100달러를 넘기며 고공행진 하자, 뒤늦게 뛰어든 ‘포모(FOMO·소외 공포)’ 자금이 대거 유입된 탓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고점에서 거래량이 터지며 개미들이 물량을 다 받아내는 전형적인 ‘상투’ 패턴이었다”며 “기관과 외국인이 차익 실현을 하며 빠져나갈 때 개인들만 폭탄을 떠안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CME의 ‘증거금 인상’ 펀치, 회생 가능성은?
폭락의 기울기를 가파르게 만든 건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기습적인 증거금 인상이었다. CME는 변동성 확대를 이유로 은 선물 유지 증거금을 15%까지 끌어올렸다. 현금이 부족한 투기 세력들이 강제로 포지션을 청산당하며(마진콜), 쏟아진 매물이 가격을 더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1980년 ‘헌트 형제 사태’ 이후 46년 만의 최대 낙폭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기술적 반등은 가능하겠지만, 추세 전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재 담당 애널리스트는 “산업재로서의 수요는 여전하지만, 현재는 펀더멘털보다 수급이 꼬인 상황”이라며 “워시 지명자의 구체적인 통화 정책 스탠스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특히 레버리지 상품은 횡보만 해도 계좌가 녹는 구조인 만큼, 섣불리 ‘물타기’에 나섰다간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