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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참전용사 없는 6·25전쟁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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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숫자 줄고 생존자는 초고령
감사의 뜻 전할 시간 얼마 안 남아
구술 채록 등 기록물化 속도 내야
후손들 커뮤니티 활동 지원도 시급

“105세 아버지를 모시고 하와이에 가려고 했는데, 건강 문제로 예매한 비행기표를 취소했네요. 1941년 이후 처음으로 기념식장에 생존자가 단 한 분도 안 계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지난 12월 초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사는 어느 여성이 AP통신에 이 같은 심경을 토로했다.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 희생자 84주기 추모식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행사 당일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이 진주만을 찾았지만, 정작 그날의 비극을 직접 겪어 생생히 기억하는 생존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참사 1주기에 해당하는 1942년 이래 최초로 벌어진 상황이니 미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도 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김태훈 논설위원

미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1941년 12월7일 하와이에서 일본군 공격에 직면했던 이들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미국인은 12명뿐이다. 이들은 모두 100세를 넘긴 고령으로, 투병 중이거나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 하와이까지 이동할 수 없었다. 진주만 공습 50주년인 1991년만 해도 추모식에 생존자 약 2000명이 함께했다. 그 뒤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생존자는 급격히 줄어 요 몇 년 동안에는 10여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직전인 2024년의 경우 단 2명이 기념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세월의 무상함이 참으로 비정하게만 느껴진다.

2차대전 초반 대세를 관망하던 미국을 결국 전쟁에 뛰어들게 만든 것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4주년을 맞아 내놓은 메시지에서 “일본의 의도는 미국의 정신을 말살하는 것이었지만, 그 치명적 공격은 되레 미국인들의 시민의식을 결집시키고 결의를 북돋웠다”며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미국인을 향해 “진주만에서 희생된 군인 및 민간인들을 항상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가 지도자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당연한 자세라고 하겠다.

진주만 공격보다 9년 뒤인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어떨까. 3년1개월의 전쟁기간 동안 전선에서 싸운 국군 장병의 전체 숫자에 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다만 군 안팎에선 100만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6·25참전유공자회에 따르면 오늘날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는 4만명에 훨씬 못 미친다. 정전협정 체결 후 벌써 70여년이 흘렀으니 생존 참전용사들의 평균 연령도 90대 중반이다. 그분들이 후대에 전쟁의 교훈을 들려주는 것도, 우리가 그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도 모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보훈 당국에 크게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먼저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에 관한 기록물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길이 보존하는 일이다. 사진 촬영부터 구술 채록, 일기나 수첩 등의 복원·정리까지 다양한 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국내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유엔의 깃발 아래 국군과 어깨를 겯고 싸운 22개국의 생존 참전용사들도 정성껏 챙겨야 마땅하다. 관계자들이 ‘한국의 국격이 달려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열성적으로 임해 주길 바란다.

두 번째로 참전용사 후손들을 정부나 지역사회가 후원하는 각종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 참여시키는 일이다. 당장 6·25참전유공자회만 해도 회원들의 고령화로 단체 존속마저 위협을 받는 실정이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기억과 정신이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려면 무엇보다도 후손들의 동참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가 최근 참전유공자법을 고쳐 6·25참전유공자회 회원 자격을 본인에서 유족으로 확대한 것은 잘한 일이다.

매년 열리는 6·25전쟁 기념일 관련 행사에 정작 참전용사들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언젠가 닥칠 것이다. 6·25를 먼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확산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참전용사들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끈’이다. 이를 미래와도 연결시키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보훈 당국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분들을 예우하고 기억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