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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에서 적군으로… 실력으로 한판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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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황대헌·린샤오쥔 맞대결

‘트러블 메이커’ 韓 황대헌
선배에 반칙 등 ‘팀킬’ 논란 구설수
메달 놓고 옛 동료와 8년만에 격돌

‘일그러진 영웅’ 中 린샤오쥔
옷 내리는 장난으로 황과 법정다툼
무죄·동정 여론에도 출전위해 귀화

8년 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만 해도 한국 남자 쇼트트랙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그러나 7년 전 ‘운명의 그날’로 인해 두 선수의 삶의 경로는 크게 달라졌다. 한 선수는 2022 베이징에 이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까지 3연속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를 누빈다. 다른 한 선수는 ‘임효준’이라는 한국 이름을 버리고 중국으로 귀화해 오성기를 달고 빙판 위를 달린다. 지독한 악연의 실타래로 얽힌 두 선수는 이제 8년 만에 올림픽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재회해 여론전, 법정 다툼이 아닌 스케이트로 승부를 가린다. 황대헌(27)과 린샤오쥔(30) 얘기다.

린샤오쥔과 황대헌은 2018 평창 올림픽에서 나란히 메달을 목에 걸었다. 3살 위 형인 임효준이 1500m 금메달과 500m 동메달을 따내며 에이스 역할을 해냈고, 한국 선수치고는 큰 체형을 자랑하는 황대헌이 한국의 취약 종목인 500m에서 은메달로 뒤를 받쳤다.

그러나 7년 전인 2019년 6월17일. 일상 속에 주고받던 장난이 비극이 됐다. 진천선수촌 웨이트장에서 쇼트트랙 남녀 대표팀 10여명 선수가 공식 훈련 전 대기 시간에 암벽 등반 기구에서 장난을 주고받았다. 암벽 기구에 오르던 황대헌의 반바지를 임효준이 잡아당기는 장난을 쳤다. 그 순간 황대헌의 엉덩이 일부가 노출됐다.

 

처음엔 가벼운 장난으로 치부됐던 이 사건은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황대헌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성희롱으로 신고했기 때문. 당시 임효준은 “친근함의 표시였을 뿐 성추행의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황대헌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임효준의 수차례 사과 시도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동성 간 성추행’이라는 낙인이 찍힌 임효준은 선수자격 정지 1년 처분을 받아야 했다. 2019∼2020시즌은 물론 2020∼2021시즌 대표 선발전에도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사실상 두 시즌을 허송세월을 보내게 된 임효준이었다.

이후 2년간 법정 다툼 다툼이 계속됐다. 1심에선 임효준의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적으로는 억울함을 푼 임효준이지만 2년간의 법적 다툼 속에 선수 생명에 위기를 느꼈고, 결국 2020년 6월 중국으로 귀화를 선택했다. 자연스레 그의 이름은 임효준이 아닌 ‘린샤오쥔’이 됐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국적도 포기한 린샤오쥔이지만, 정작 2022 베이징 올림픽에는 설 수 없었다. 국적을 바꿀 경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선 이전 국적으로 마지막 국제대회 출전 이후 3년이 지나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게다가 황대헌은 린샤오쥔이 그토록 뛰고 싶었던 베이징 무대에서 중국의 역대 최악의 편파판정을 딛고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두 선수의 엇갈린 운명이 극명하게 대비된 장면이었다.

귀화 당시만 해도 쇼트트랙 라이벌 국가인 중국으로 귀화한 린샤오쥔을 두고 ‘매국노’, ‘징계 회피를 위한 꼼수’ 등으로 한국 여론이 싸늘하게 식었지만, 사건 당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동정여론도 생겼다. 임효준이 장난을 치기 전에 황대헌도 암벽 기구에 오르던 여자 선수들의 엉덩이를 주먹으로 때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이 또한 엄연히 성추행에 해당되는 행동이다. 황대헌 본인도 상대가 느끼기에 따라 성추행에 해당되는 행동을 해놓고 남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식 대응이었다.

이후 황대헌은 빙판 위에서도 대표팀 선배인 박지원을 상대로 ‘팀킬 논란’을 일으키며 국내 팬들에게 비호감 이미지가 낙인찍혀버렸다. 2023∼2024 1차 월드컵을 시작으로 2024 세계선수권 1500m와 1000m까지 경기 도중 선두에 있던 박지원을 인코스로 무리하게 추월하려다 같이 넘어지거나 박지원이 추월하자 손으로 밀어버리는 등 갖가지 반칙 플레이를 저질렀다. 이후 황대헌은 “서로 경쟁하고 있었고 시합을 하다 보면 충분히 나오는 상황”이라고 해명을 했고, 그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더욱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이런 기나긴 우여곡절과 ‘운명의 장난’ 끝에 린샤오쥔과 황대헌은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피할 수 없는 승부를 펼치게 됐다. 물론 두 선수 모두 한국과 중국 대표팀 내에서 에이스 입지는 아니다. 황대헌은 이미 임종언에게 에이스 자리를 내준 상태고 현역 남자 쇼트트랙은 윌리엄 단지누(캐나다)가 최강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 같은 서사가 있는 두 선수 사이이기에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맞대결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미 30대에 접어든 린샤오쥔과 20대 후반의 황대헌에겐 이번 밀라노 무대가 전성기 기량으로 뛸 수 있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태극기와 오성홍기를 가슴에 새기고 만날 황대헌과 린샤오쥔의 올림픽 처음이자 마지막 맞대결에는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까. 조편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둘의 첫 맞대결은 10일 남자 1000m 예선과 혼성계주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