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며칠째 이어지던 2일,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 앞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로 요란했다. 두꺼운 패딩을 겹쳐 입은 보호자들의 입에선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고, 의료진의 발걸음은 다급했다.
혹시 “날이 추우니 혈압만 조심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겨울의 진짜 공포는 혈압뿐만이 아니었다. 끈적끈적해진 혈관과 싸우는 당뇨 환자들의 생사를 건 사투, 그 긴박한 현장을 기록해봤다.
◆“이불 밖이 위험해” 웅크린 사이…혈관은 비명 질렀다
“그냥 날이 추워서 며칠 운동 쉬고 집에만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는 당뇨 경력 10년 차 김철수(가명·68)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평소 식단 조절을 하며 공복 혈당 120mg/dL 대를 유지해오던 모범 환자였다.
사단은 한파특보가 내려진 지난주 시작됐다. 영하 12도의 칼바람에 산책을 포기하고 사흘 내내 집에 머물렀다. 입이 심심해 귤 몇 개를 까먹고,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배달 음식을 시킨 게 화근이었다.
사흘 만에 잰 혈당 수치는 340mg/dL. 혈당 측정기 오류인 줄 알고 다시 쟀지만 결과는 같았다. 어지럼증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고, 결국 김 씨는 가족의 부축을 받아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김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날 병원 진료실 앞은 김 씨처럼 갑작스러운 ‘혈당 스파이크’를 호소하는 환자들로 북적였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박모(72) 씨는 “발가락 끝이 저릿저릿해서 핫팩을 붙였는데 감각이 없어 화상을 입은 줄도 몰랐다”며 붕대 감은 발을 내보였다.
◆한파 3주 뒤, 죽음의 그림자가 덮친다
현장 의료진은 “진짜 위기는 한파가 닥친 직후가 아닌 그 여파가 몸을 갉아먹는 ‘3주’ 동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연구팀이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통해 한파와 당뇨병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결과는 섬뜩하다.
한파 발생 후 3주 이내에 당뇨 환자의 사망 위험은 2.02배까지 치솟았다. 입원율도 평소보다 1.45배 높았다. 단순한 추위가 아니다. 기온 급강하는 당뇨 환자에게 ‘재난’이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기온이 뚝 떨어지면 우리 몸은 살기 위해 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이때 에피네프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게 인슐린 기능을 무력화시킨다”며 “난로 땐다고 연료를 계속 붓는데 연통이 막힌 꼴이다. 혈당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햇빛 사라진 방 안…배달 앱의 ‘역습’
환자들의 공통점은 ‘실내’ 생활이었다. 겨울철 짧아진 일조량 탓에 비타민D 합성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베타세포는 비타민D가 있어야 제 기능을 한다. 해를 못 보니 췌장도 파업을 선언한 셈이다.
움직임이 줄어든 자리는 고열량 배달 음식이 채웠다. 활동량 감소로 근육이 줄어들면 포도당 소모가 안 된다.
핏속을 둥둥 떠다니는 당분은 끈적끈적한 시럽처럼 변해 미세혈관을 막는다. 이것이 눈으로 가면 망막병증, 콩팥으로 가면 신부전, 발로 가면 족부 궤양이 된다.
◆살고 싶다면 ‘보습’하고 ‘움직여라’
이 살벌한 겨울을 어떻게 넘겨야 할까. 진료를 마친 의료진은 뜻밖에도 ‘로션’과 ‘실내 자전거’를 처방전처럼 강조했다.
의료진은 “겨울철 당뇨 환자의 발은 마른 장작과 같다. 갈라진 틈으로 세균이 침투하면 돌이킬 수 없다”며 “샤워 직후 보습제를 듬뿍 발라 인공 보호막을 씌우는 게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이라고 조언했다.
춥다고 웅크리면 혈관은 더 굳는다. 거창한 운동이 아니어도 좋다. TV를 보며 실내 자전거를 타거나, 아파트 복도를 걷는 것만으로도 근육은 포도당을 태운다. 당신의 혈관은 지금 안녕한가. 이번 겨울, 패딩 속에 감춰진 내 몸의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