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있는가.’ 1990년대 이래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맴돌던 문제 의식이다.
많은 국민은 북핵 위협에 대응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한국 사회가 선호하는 북핵 해법은 남북 관계와 동아시아 정세 변화, 국내 정치적 환경 등에 따라 달라졌다.
정치 성향과 세대, 지역별 특성도 북핵 해결책을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변수가 됐다.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 2010년 체결한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5일(현지시간) 만료되면서 강대국 간 무제한 핵 경쟁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등 국제 정세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특성은 세계일보가 창간 37주년을 맞아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30∼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연령·정치적 견해 따라 북핵 해법 달라
여론조사에선 북핵 대응책과 관련, 응답자의 45%는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더라도 생산능력을 갖추는 핵잠재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화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 추진을 꼽은 응답은 20%, 핵무기 자체 개발·보유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18%,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꼽은 응답은 12%였다. 모든 연령대에서 핵잠재력을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만 구체적 측면에선 연령과 정치적 성향,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에서 응답 비율이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18∼29세와 30대에선 대화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 추진을 꼽은 응답이 각각 10%, 12%에 불과했다. 핵무기 개발이나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대응책으로 선택한 비율보다 상당히 낮았다.
특히 30대에선 미국 전술핵 재배치(26%)를 꼽은 응답이 비핵화 대화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40대에선 핵잠재력 보유,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52%와 25%로 나타났다. 실질적 차원의 핵무기 확보에는 긍정적이지 않다는 의미로 보인다.
50·60대에선 자체 핵개발을 꼽은 응답이 다른 세대보다 높았다. 50대는 20%, 60대는 25%였다. 특히 60대는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추진(24%)과 자체 핵개발의 응답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정치 성향을 기준으로 구분했을 때는 보수·진보의 차이가 뚜렷했다.
자신이 보수 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43%는 핵잠재력 보유를 북핵 대응책으로 꼽았다. 자체 핵개발과 미국 전술핵 재배치도 각각 24%, 19%에 달했다.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추진을 꼽은 응답은 10%에 그쳤다.
진보 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 중 45%는 핵잠재력 보유를 북핵 대응책으로 선택했다. 다만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추진을 꼽은 응답도 34%에 달해 보수 성향 응답과 대조를 이뤘다.
이같은 특성은 지지 정당별 선호도에도 반영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 중 46%는 핵잠재력 보유를, 33%는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추진을 꼽았다. 핵무기 개발과 미국 전술핵 재배치를 꼽은 응답은 각각 13%, 4%에 불과했다.
국민의힘을 지지 정당으로 선택한 응답자 가운데서도 42%가 핵잠재력 보유를 꼽았다. 다만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를 선택한 응답은 6%에 그쳤다. 반면 핵개발과 미국 전술핵 재배치는 각각 22%, 24%에 달했다.
대통령에 대한 시각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자 중 47%는 핵잠재력 보유를, 30%는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추진을 꼽았다. 자체 핵개발 또는 미국 전술핵 재배치를 선택한 응답은 각각 14%, 5%에 그쳤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었던 응답자 가운데서도 41%는 핵잠재력 보유를 선택했다. 반면 비핵화 추진은 6%에 불과해 자체 핵개발(23%)·미국 전술핵 재배치(26%)에 훨씬 못미쳤다.
◆대화보다 핵능력 선호가 많은 이유
이번 여론조사에선 북핵 대응책을 바라보는 세대간 인식 차가 두드러졌다.
전체 조사 대상 중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추진을 꼽은 18∼29세와 30대 응답자가 40·50·50대 응답자의 절반 이하에 불과했다.
18∼29세, 30대에선 자체 핵개발과 미국 전술핵 재배치를 선택한 응답이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를 선택한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이는 북한을 바라보는 세대 간 인식과 경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나이 든 세대는 역사적으로 북한이 대화를 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지만, 젊은 세대는 유소년때부터 핵무기 고도화 등 강경한 모습의 대북 인식이 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50대 이상 연령층은 1983년 이산가족 찾기와 1991년 남북 탁구 단일팀, 2000년 6·15 공동선언,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관계에서 ‘훈풍’이 불었던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북핵 대응책에서도 대화를 통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인식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대북 강경책(핵무장)과 유화책(대북 대화)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젊은층은 어린 시절부터 북핵 위기 국면이 상수였다. 6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비롯해 북한이 대남 위협과 도발, 막말을 쏟아내면서 약속을 뒤집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많이 지켜보며 성장했다.
북한 입장에선 대남 전술이었지만, MZ세대의 대북관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북한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지켜보며 자란 젊은층 사이에서 ‘믿을 수 없다’ ‘대화가 안된다’ ‘북한과 같이 가기는 어렵다’는 부정적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 통일 지향적 개념보다는 현상 유지·관리를 더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현상 유지·관리를 위해선 북핵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과거에 자체 핵무장 지지가 많았던 이유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을 진행할 길이 열리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핵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지만 생산능력을 갖추는 핵잠재력 보유와 관련이 있다.
자체 핵개발은 국제사회의 비확산 기조 등의 리스크가 크다. 반면 핵잠재력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향적 태도를 보이면서 정치적 리스크가 크게 줄어들었다.
국제정세 관련 정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MZ세대가 북핵 대응에서 감성적인 측면보다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요소를 중시하면서 핵잠재력 보유를 대안으로 주목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30대 응답자 중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북핵 대응책으로 꼽은 비율이 26%에 달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핵무장의 어려움 또는 파급력에 대한 정치적 고려와 더불어 ‘전술핵 재배치가 안보에 더 득이 되지 않느냐’는 실용적·기능적 생각을 더 많이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 성향에선 보수층이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보다 핵개발 및 미국 전술핵 재배치를 선호하는 기류가 뚜렷했다.
보수 성향 유권자는 북한 체제와 군사력을 위협적으로 보며, 핵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는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지 않아도 핵 억지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 옵션이라는 이식이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진보 성향 유권자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충돌 방지를 중시한다. 북핵 문제를 군사력 또는 제재·압박으로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려우며, 협상 테이블에서 해결해야 하는 장기적 과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한반도에서 상호 불신을 완화하면 북한이 행동을 바꿀 여지가 있다고 본다. 제재와 압박 일변도 정책은 북한의 위협 인식을 더욱 자극해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긴장 완화 조치와 비핵화 대화를 병행해야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 대응을 둘러싼 방법론은 시대적 환경 변화 등에 따라 선호도가 변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러나는 변화는 정치적 성향에 더해서 세대별 차이가 서서히 벌어지는 모양새다.
서로 다른 인식과 경험을 지닌 세대들이 북한과 핵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두드러진다면, 정부의 대북·비핵화 정책은 세대간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대북 인식 차이를 좁히면서 범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는 대북·비핵화 정책과 전략적 억제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조사 어떻게… 전국 성인 1010명 무작위 추출 전화 인터뷰
세계일보는 창간 37주년을 맞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한국 사회의 최우선 과제 관련 여론 등을 들었다.
이번 조사는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은 통신사 제공 휴대전화 가상번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했고,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 발표 주민등록인구를 기준으로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 가중치(셀가중)를 부여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3.7%(총 통화시도 7361건)다. 조사 결과는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값으로 세부 항목의 합이 100%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전체 응답자 구성은 남성 502명(50%), 여성 508명(50%)이다. 연령별로는 만 18~29세 152명(15%), 30대 151명(15%), 40대 171명(17%), 50대 196명(19%), 60대 180명(18%), 70세 이상 160명(16%)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