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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불 켜는 순간, 7000명이 나를 본다”...중국 호텔 ‘스파이캠 생중계’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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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설렘을 안고 들어선 호텔 객실, 키카드를 꽂고 조명이 켜지는 순간 당신은 이미 수천 명의 관객 앞에 선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낯선 천장의 환기구 너머로 나를 지켜보는 차가운 렌즈, 그 영상이 텔레그램을 통해 실시간 유료 생중계되는 세상. 누군가에게는 가장 아늑해야 할 휴식처가 다른 이에게는 거대한 범죄 수익을 창출하는 '라이브 스튜디오'로 변질되고 있었다.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 뉴시스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 뉴시스

중국 호텔이 몰래카메라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BBC 폭로에 따르면 투숙객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이른바 ‘스파이캠 포르노’라는 이름으로 수천 명에게 유료 생중계되며 거대한 범죄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출신 남성 ‘에릭’(가명)은 2023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영상을 보던 중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3주 전 중국 선전의 한 호텔에서 여자친구와 보낸 하룻밤이 수천 명이 접속하는 채널에 공유돼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3년 전의 악몽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외출할 때면 모자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호텔 투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피해 영상 삭제를 요청해도 텔레그램 측의 묵묵부답 속에 영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로 복제되고 있다.

 

BBC가 1년 6개월간 추적한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텔레그램을 통해 홍보되는 최소 6개의 사이트와 앱이 180곳 이상의 호텔 객실에 설치된 카메라를 운용하고 있었다. 실제 한 사이트에서는 7개월 동안 54대의 카메라가 번갈아 가동되며 투숙객의 일상을 실시간 스트리밍했다.

 

범죄 수법은 치밀했다. 투숙객이 객실에 들어와 키카드를 꽂는 순간 촬영이 자동 시작되도록 설계됐으며, 구독자들은 실시간 댓글로 투숙객의 외모를 평가하는 등 노골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취재진이 중국 정저우의 한 호텔 벽면 환기구에서 찾아낸 카메라는 시중의 흔한 탐지기로는 감지조차 되지 않았다. 장비가 제거되면 운영자는 즉각 다른 호텔에 대체 장비를 설치하며 수사망을 비웃었다.

 

범죄 수익도 막대하다. ‘AKA’로 불리는 한 중개상은 지난해 4월 이후 최소 16만3200위안(약 3446만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당국이 지난 4월 호텔 소유주들에게 몰래카메라 점검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을 마련했지만, 기술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범죄는 여전히 성행 중이다.

 

홍콩의 성폭력 위기 대응 센터 레인릴리의 블루 리는 “피해 영상 삭제 요청이 급증하고 있지만, 플랫폼의 비협조로 조치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뒤늦게 텔레그램 측이 “비동의 음란물은 약관 위반”이라며 관리 방침을 밝혔으나, 이미 거대한 범죄 생태계로 자리 잡은 ‘스파이캠 포르노’를 근절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