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관련해 ‘어느 나라가 IAEA의 사찰을 거부하면 전 세계 신문에서 1면 기사로 보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있다. 국제사회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IAEA의 사찰 요구에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곧 몰래 핵무기를 만들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과거 소규모의 우라늄 농축 실험이 진행한 사실이 알려지며 IAEA의 사찰을 받는 곤욕을 치렀다. 자칫 ‘핵 개발 의혹’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회부돼 제재를 받을 수도 있었다. 미국 등을 상대로 “핵무기와 전혀 관계없는 순수한 과학 실험”이라고 설득한 끝에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IAEA 사무총장이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83·이집트)는 아직도 한국 전현직 외교관들의 뇌리에 ‘저승사자’로 기억된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IAEA는 1957년 창설됐다. 핵 물질의 군사적 이용, 즉 원자폭탄 제조 시도를 차단함으로써 NPT 체제를 지키는 것이 핵심 목표다. 다만 핵무기를 ‘합법적으로’ 보유한 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미국·영국·중국·프랑스·러시아)은 예외다. 그 때문에 IAEA를 향해 ‘강대국들의 기득권만 옹호하는 단체’라는 비판적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지난 2025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합의에 따라 앞으로 핵추진 잠수함(핵잠)을 만들어 운용할 계획이다. 그럴려면 IAEA의 철저한 사전 검증을 통해 ‘혹시 핵무기로 전용하려는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야 한다.
엘바라데이 못지않게 한국인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킨 IAEA 수장이 있다. 바로 라파엘 그로시(65·아르헨티나) 현 IAEA 사무총장이다. 원래 IAEA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로 일하다가 2019년 일본 출신 아마노 유키야(天野之彌) 사무총장이 갑자기 사망하며 그 뒤를 이은 인물이다. 2023년 7월 그로시는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는 일본이 후쿠시마(福島)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에 나서기 직전이었다. 주변국들, 특히 한국의 야당과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했다. 그로시는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를 듣되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검증 결과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IAEA의 결론을 설명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한 당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그로시와 IAEA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져 입국 절차가 장시간 지연되는 이례적 사태가 벌어졌다.
국회를 찾은 그로시는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했다.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뜻에서 단식 중이던 우원식 의원(현 국회의장)은 IAEA의 검증 결과를 겨냥해 “중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적 검증”이라고 비판했다. 그로시는 11개국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검증에 참여한 점을 들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답변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그로시가 방한 기간 겪은 일을 ‘봉변’이라고 부르며 “한국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그랬던 그로시가 오는 2027년 1월1일 임기를 시작하는 제10대 유엔 사무총장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로시가 정말 그 자리에 오를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그로시 사무총장이 탄생한다면 그 사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뀐 민주당, 그리고 민주당 인사들이 대거 참여 중인 현 이재명정부의 입장이 조금은 난감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