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보장하는 건 무대의 크기와 화려함이 아니다. 그 공간을 채우는 서사의 밀도와 상상력의 힘이다. 초연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오열극’이란 별칭까지 생긴 뮤지컬 ‘긴긴밤’이 이를 완벽히 증명한다. 압도적인 원작이 창의적 연출과 싱크로율 높은 배우들 연기와 합쳐지면서 아동극 경계를 넘어선 흥행작이 됐다.
주인공은 세상에 단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아기 펭귄.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라나 야생으로 나갔으나 인간에 의해 가족을 잃고 동물원에 갇힌다. 그곳에서 코뿔소 앙가부를 만나 위로를 얻고 전쟁 통에 파괴된 동물원에서 펭귄 치쿠와 함께 버려진 알을 품은 채 탈출한다. 그러나 가혹한 동물원 바깥세상에서 치쿠마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은 노든은 알에서 깨어난 펭귄과 함께 바다를 향해 험난한 여정을 이어간다.
원작은 2021년 출간돼 2년 만에 3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워낙 강력한 서사와 감동 때문에 빠르게 뮤지컬 무대로 옮겨져 2024년 정식 초연된 후 호평이 이어지자 지난해 앙코르 공연을 거쳐 올해 다시 재연이 시작됐다.
뒤편을 가로지르는 반달형 경사로와 그 앞에 심어진 긴 풀들이 전부인 단출한 무대는 바닥에 깔린 LED와 조명에 힘입어 아프리카 평원과 사막, 불타오르는 도심 동물원, 거대한 바다와 물웅덩이 등으로 변하다 마침내 푸른 바다가 된다. 거창한 인형이나 분장 없이, 여행 가방 하나로 코뿔소의 뿔을, 긴 호스로 코끼리의 코를 상징한다. 특히 노든의 상징인 커다란 가방은 가족과 친구를 모두 잃고 홀로 남은 노든이 짊어진 ‘생존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원작과 달리 뮤지컬은 홀로 선 펭귄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나는 펭귄이다. 나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나의 아버지들이 가르쳐줬으니까.”
코뿔소와 아기 펭귄이 함께 보내는 긴긴밤, 서로의 온기에 기대며 되새기는 생존의 의미와 연대의 가치가 가슴에 사무친다. 잠언처럼 마음에 각인되는 대사가 주는 울림이 크다. “살아남는 건 죽기보다 어렵지만 살아남을래. 죽을 힘을 다해서. 오늘 하루 버티고 나면 내일이 찾아올 테니.”
특히 작품 감정선을 완성하는 건 아기 펭귄이다. 초연부터 참여한 설가은(16)양과 앙코르 공연부터 합류한 최은영(12)양, 이번 재연부터 함께하는 임하윤(12)양이 열연 중이다. 지난달 28일 공연에선 2021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데뷔한 최은영양이 인상적 연기를 보여줬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걸어 나온 듯한 몸짓과 천연스러운 대사 등이 맞물린다. 절로 바다로 향해 나아가는 아기 펭귄의 긴 여정을 응원하게 만든다. 이만한 아역 배우를 만난 적이 있었나 싶은 연기다.
‘오열극’답게 극 중반부터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전쟁 속에서도 치쿠가 마지막 순간까지 알을 품다 죽고 그 알을 노든이 건네받는 장면부터 본격적인 오열이 시작된다. 머릿속으로 뭉툭한 코뿔소 다리가 작은 알을 에워싸는 모습이 떠오르면서다. 그렇게 태어난 펭귄을 홀로 키우고 삶에 대해 가르치며 다시 푸른 바다를 향해 떠나보내는 노든에게서 한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사랑과 연대가 만들어내는 기적을 보게 된다.
홀로 길을 나선 끝에 마침내 푸른 바다를 만나는 아기 펭귄은 인생이란 고해를 건너는 우리 모습과 겹쳐진다. 그렇기에 아기 펭귄의 다짐은 오래 남는 위로가 된다.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 차갑게 흩날리는 바람. 상상했던 것과는 달라. 저 바닷속으로 걸어가면 또 기다릴 밤을 알아. 하지만 그곳에서 언젠가 또 만나게 될 내 삶 가장 반짝이는 것.”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1관에서 3월 29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