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은 흔히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으로 회고된다. 그러나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보다 앞서 “왜 시작했으며, 더 중요하게는 왜 멈추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쟁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1964년 통킹만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미국의 개입은 훨씬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프랑스가 철수하자 미국은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남베트남 정부 수립을 지원했고, 원조와 군대 육성을 통해 간접 개입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따라서 케네디 암살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이 왜 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고 오히려 직접 개입의 길로 들어섰는가가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베트남전쟁은 필연이 아니라 선택의 산물이었다. 그 선택의 배경에는 약하게 보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음에도 남베트남의 상황은 악화일로였고, 세계 GDP의 약 40%를 차지하던 초강대국이 북베트남과 같은 약소국에 끌려다니는 모습은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라는 대규모 국내 개혁을 추진하기에 앞서, 베트남 문제를 조기에 매듭지어 정치적 부담을 덜고자 했다.
문제는 그의 참모진이 이러한 기대를 뒷받침했다는 점이다. 전쟁이 장기화되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정보는 축소되거나 수정되었고, 조직이 듣고 싶어 하는 분석만 남았다. 논쟁은 대통령에게 도달하기 전에 이미 정리됐으며, 언제나 낙관적인 결론이 보고됐다. 정책 노선에 대한 회의와 의심은 무능이나 배신의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의사결정은 점점 동질화되었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말한 ‘집단사고(groupthink)’가 작동한 것이다.
이 집단사고는 전쟁에 대한 인식 자체를 왜곡했다. 정책 결정자들은 전쟁을 우연과 마찰, 의지가 충돌하는 불확실한 투쟁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변수를 조절하면 통제할 수 있는 정책 문제로 이해했다. 여기에 중국의 개입으로 장기전이 되었던 한국전쟁의 트라우마까지 겹치면서 북위 17도선을 넘어 북베트남을 직접 침공하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배제됐다. 대신 국방장관 맥나마라가 제시한 ‘점진적 반응(gradual response)’ 전략이 채택됐다. 폭격과 병력 투입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이면, 상대 역시 손익을 계산해 물러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북베트남과 베트콩에게 이 전쟁은 통일과 혁명을 위한 투쟁이었다. 점진적 압박은 경고가 아니라 미국이 결단을 회피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오히려 그들의 결의를 강화했다.
그 결과 전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이미 투입한 비용과 위신 추락의 부담 속에서 전쟁은 점점 늪으로 빠져들었으며 결국 실패에 이르렀다. 베트남전쟁은 애초부터 의사결정 구조의 실패였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