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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의 반란’ 김상겸 스승 이상헌 “중후반부에 뒤집을 확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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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주목받지 못했던, ‘언더독’의 반란이었다.

 

대한민국 스노보드 대표팀의 맏형인 김상겸(37·하이원리조트)이 네 번째 도전 끝에 올림픽 포디움에 올랐다. 김상겸은 8일 이탈리아 손드리오주의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열린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벤야민 카를(오스트리아)을 상대로 0.19초차로 패하며 값진 은메달을 땄다.

 

4번째 도전 만에 메달을 손에 넣은 김상겸(오른쪽) 선수와 이상헌 감독이 은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헌 감독 제공
4번째 도전 만에 메달을 손에 넣은 김상겸(오른쪽) 선수와 이상헌 감독이 은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헌 감독 제공

이번 경기로 김상겸은 본인의 커리어는 물론 한국 올림픽 역사에도 획을 그었다. 이번 메달은 김상겸의 인생 첫 올림픽 메달이자,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이 수확한 첫 메달이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400번째 메달이기도 하다. 

 

‘배추보이’ 이상호에 이어 ‘럭키가이’ 김상겸까지, 두 선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상헌 감독은 9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세상이 그래도 공정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감독은 “오랜 시간 힘든 시간을 겪은 상겸이의 수상은 묵묵히, 꾸준하게 하면 반드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모범답안이었다”며 “언젠가는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먼저 가냐, 늦게 가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상겸은 2014년 소치와 2022년 베이징에선 예선 탈락에, 2018년 평창에선 16강에 그쳤다. 결국 본인의 네 번째 올림픽인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에서 16년 만에 은메달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경기에서 김상겸은 중후반부에 역전을 노리는 전술을 폈다. 김상겸은 결승을 제외한 16강, 8강, 4강에서 초반에는 상대 선수보다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중후반부 뒷심을 발휘해 상대 선수를 매섭게 압박했다. 이 감독은 “상겸이가 초반부엔 가속을 붙이기 위해 라인을 크게 돌았다”며 “초반에는 라인을 적게 돈 사람보다 느려 보이지만, 중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가속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스노보드 김상겸이 지난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의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8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를 꺾고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스노보드 김상겸이 지난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의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8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를 꺾고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뉴스1

경기가 이어지며 슬로프가 망가진 것도 김상겸에겐 오히려 기회가 됐다. 이 감독은 “16강이 끝난 후 보니 슬로프 중간에 팬 곳이 생기는 등 눈이 망가졌었다”며 “이 상황에서 라인을 짧게 타면 눈에 걸려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상겸이에게 크게 돌 것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6강 상대였던 잔 코시르, 8강의 상대였던 롤란드 피슈날러 모두 경기 도중 코스를 이탈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상겸의 예선 2차 주행이 좋은 성과를 보인 것도 승리의 실마리가 됐다. 앞서 김상겸은 예선에서 1차 시기에서 43초74로 10위를 기록한 뒤, 2차 시기에서 기록을 0.3초 앞당겨 43초44를 기록했다. 이 감독은 “2차의 라인이 좋았고, 게이트 세팅과도 잘 맞았다”고 짚었다.

 

마지막 결승에서 만난 벤야민 카를과의 대결에서, 김상겸은 앞선 경기와 다르게 초반부터 치고 나갔다. 쾌조의 활주를 보이던 김상겸은 슬로프 중반부 엣지가 강하게 박히며 속도가 줄어들었고, 그 사이 벤야민 카를에게 선두를 빼앗겼다. 이 감독은 “(상겸이가) 안 하던 실수를 했는데, 결국 따라잡았고 심지어는 조금 더 이겼다”며 “다만 피니시를 몇 게이트 남기고 또 실수를 했다. 그 부분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김상겸은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종목에 최초로 출전한 한국인 선수였다. 일찌감치 올림피언의 영광을 거머쥐었지만, 비인기 종목의 열악한 상황은 쉽지 않았다. 이 감독은 “올림피언이라는 것 자체가 운동선수로서 영광이지만, 비인기종목이다보니 실업팀이 없어 한동안 직업이 없기도 했다”며 “상겸이가 옛날엔 휴대전화 요금도 어렵게 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스노보드를 타면서도 어엿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직업인이 됐다”며 작게 웃었다. 김상겸이 가정을 이룬 후 여유와 안정감을 갖게 된 것도 경기력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이 감독은 귀띔했다.

 

스노보드 김상겸이 지난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의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값진 은메달을 획득 후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스노보드 김상겸이 지난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의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값진 은메달을 획득 후 기뻐하고 있다. 뉴스1

4번의 도전, 16년간의 기다림을 통해 메달을 목에 건 김상겸. 그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든든한 기반 위에서 인생의 제2막에 나선다. 이번 시즌 랭킹 1위인 롤란드 피슈날러가 45세의 나이임을 고려하면 김상겸에게도 아직 1∼2번의 올림픽 기회가 더 남아있는 것이다. 김상겸은 대회 직후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2번 정도는 더 올림픽에 나오고 싶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간 본인이 잘 이겨냈고 버텨왔기에, 어찌 보면 인생의 제2막이 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살아왔던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냈으니까요. 스승의 입장에선, 상겸이가 앞으로도 조금 더 웃었으면 좋겠습니다(이상헌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