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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분홍 나막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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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며칠 무거운 신발을 신고 다녔더니 곧장 발이 신호를 보낸다. 족저근막염이 도지려나 보다. 욱신거리는 발바닥을 주무르다 엉뚱하게도 이 시를 떠올린다. 지독한 사랑의 나막신이 등장하는 시. 알다시피 나막신은 두꺼운 통나무를 깎아 만든 신발이다. 무거운 데다 앞뒤로 제법 높은 굽이 있어 결코 착화감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아직 직접 신어본 바는 없지만….

 시 속 나막신은 어떤가. 치수도 맞지 않았던지, 발톱이며 발뒤꿈치, 복숭아뼈를 죄다 깎고 난 뒤에야 신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근근이 신발에 발을 맞췄다는 뜻일 테지만, 단지 비유만은 아닌 것 같다. 피가 배어 나올 지경이라니. 붉은 꽃을 짓찧어 그것을 신발코에 문질러 피를 감추기까지. 조금 섬뜩하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얼핏 예스러워 보이는 이 시가 당차게 뿜어내는 뜻밖의 정동(情動)이 내게는 몹시도 매혹적이다.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하는 확신의 결구 또한.

 “아이 좋아라” 중얼거리며 발을 주무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지난 며칠간 나는 어떤 춤을 춘 것일까.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