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자민당이 8일 치러진 총선에서 단독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일본의 외교안보 정책 향방, 그것이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익 성향인 다카이치 총리가 ‘강한 일본’을 기치로 이른바 ‘평화헌법’ 수정에 나선다면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 상황은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전쟁 가능 국가’ 개헌 나설까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확보한 압도적 의석을 토대로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 등 보수적 외교·안보정책 추진에 나설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선 압승 후 9일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개헌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개헌 추진 일정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 나라의 미래를 확고히 내다보면서 헌법 개정을 위한 조정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겠다”면서 “헌법 심사위원회에서 초당적 논의가 가속화하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총선 전 유세에서도 “자위대의 긍지를 지키고 확고한 실력조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개헌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총선 압승 후 재차 이를 확인한 것이다.
앞서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지난해 10월 새로운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헌법 9조와 긴급사태 조항 관련 개정을 위해 헌법심사회에 조문 기초(起草·초안을 잡음) 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일본 헌법 9조는 평화헌법의 핵심으로 전쟁·무력행사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미보유, 교전권 부인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숙원이었던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전환과 연결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방위비 조기 증액을 위한 3대 안보문서 개정, 살상무기 수출을 제한한 ‘5유형 규제’ 철폐작업에도 착수한 상태다. 핵추진잠수함 보유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중·러 밀착 등 엄중한 안보 상황을 들어 일본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가 차원의 정보분석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정보국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견지하고 있는 ‘비핵 3원칙’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만, 야권에서는 선거에 압승한 만큼 재검토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개헌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 국회의 의석 분포,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여론의 여전한 반감 때문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9일 “압승했다고 해서 모든 걸 단번에 밀어붙이기는 어렵다”며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성사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중의원에서는 개헌 의석을 확보했으나 참의원은 개헌에 부정적인 야당이 여전히 다수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참의원 구도상 개헌 발의 요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며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하려는 시도는 가능하겠지만 일본 사회 전체에 개헌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형성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개헌 시도에 나선다고 해도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일본의 안보 법제와 방위 정책은 이미 상당 부분 변화했다”며 “헌법 9조가 상징적으로 남아 있을 뿐 실질적 정책 변화는 아베 정부 시절부터 진행돼 왔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곧바로 한국에 위협이 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일 갈등 장기화…한국 외교 주목
일본의 개헌 논의와 별개로 자민당의 압승이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은 크다.
일단 중·일 관계의 냉각기가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대만 유사시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다카이치 총리는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중국의 강한 반발에다 야당의 공세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번 총선으로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것은 물론 중국에 강하게 맞설 수 있는 정치적 기반도 확실히 했다.
중·일 관계 악화의 장기화는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넓힐 수 있다. 이 교수는 “(대만문제를 중국의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시진핑 주석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악화국면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양쪽 모두 한국을 자국 쪽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어 우리의 ‘몸값’이 올라간 상황이다.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총리 취임 전 주장했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에도 시선이 쏠리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우선 동맹국과 주변 국가들에 제대로 이해를 얻어야 한다.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한국, 중국을 의식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22일 열리는 일본 시마네현 주관 ‘다케시마의 날’ 행사가 주목된다. 과거 주장한 대로 다카이치 총리가 이 행사에 정부 참석자를 기존의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높일 경우 한·일 관계는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진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이 중국과도 갈등하고 한국과도 갈등하면 외교적으로 부담이 크다”며 “다카이치 총리가 중국과 갈등을 이어가는 한 오히려 한·일 관계는 안정적으로 관리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