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 지역본부가 지점 예산으로 본부 접견실에 설치할 의류관리기(스타일러)를 구매하라는 황당한 지시를 내렸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회계처리 시에는 ‘스타일러를 구매했다고 적지 말라’며 은폐하려 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런 지시를 내린 본부장이 과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게 신고하지 말라고 회유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자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산업은행의 한 지역본부장 A씨는 지난달 22일 본부에 설치할 스타일러를 산하 지점 예산으로 구입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지시를 전한 관계자는 “본부는 회계처리가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해 지점에서 예산 처리를 부탁한다”며 “예산 집행 시 내역에 ‘스타일러’로 작성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이 같은 지시를 두고 A씨가 내부 규정상 스타일러 구매를 위해 예산을 집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고 본부에서 사용할 물품 구입을 지점에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제보는 6일 산업은행 소관인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실에도 접수됐다.
A씨는 과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게 사건을 무마하라고 회유하고 지시에 따르지 않자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직원 B씨는 2024년 상반기 감찰부에 본점 팀장급 C씨로부터 상습적인 폭언을 들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C씨가 시어머니가 위독한 상황임을 알린 B씨에게 “지금 바쁘니까 (시어머니) 좀 이따 죽으라 해라. 넌 정신이 있는 거냐”고 폭언하거나 “애엄마들은 이래서 안 돼”라는 차별적인 비난을 일삼았다는 게 B씨 주장이다. B씨는 “C씨에게 폭언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직원들이 많다”며 “일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치아가 빠지거나 시력을 잃는 등 신체적 상해를 입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C씨에게 피해당했다는 또 다른 직원도 “개인적으로 폭언보다 업무 과중이 심각했다”며 “모든 업무가 저에게만 오고 C씨가 저만 계속 찾으니 환청이 들리는 정도였다”고 호소했다. 이 직원은 C씨와 일할 당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이석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B씨를 비롯한 일부 직원들은 감찰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되레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제보에 따르면 A씨는 감찰부에 신고를 접수한 B씨에게 “이 일을 크게 만들면 너도 은행 생활이 더 이상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고 철회를 회유했다. 당시 실장급이었던 A씨는 B씨에 대한 인사 평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감찰 조사 후 B씨는 2024년 여름 본점에서 지역 한 지점으로 전출됐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C씨에 대한 별도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B씨는 인사상 불이익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정 연차가 되면 승진하는 구조상 18년 차인 B씨는 3급 승진 평가 대상이었음에도, 승진 대상 후보자 3배수에게 보내는 메일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B씨는 “승진 자체가 안 되는 건 수긍하지만 동기들 중 해당 메일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A씨가 종무식에서 ‘나에게 찍혀서 날아간 애’라고 직접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C씨는 ‘폭언’ 의혹에 대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으며 인사부에서 조사한 결과 당시 팀원들도 그런 식의 폭언은 없었다고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오해를 풀기 위해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식으로 사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노사 동수 고충처리위원회를 열어 내주부터 공동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돼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타일러 구입 지시와 관련해선 “스타일러를 규정상 구비할 수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본부에 둘 물품을 지점 예산으로 집행하라고 지시한 부분에 대해 내부적으로 확인 중”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