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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20조원의 신기루와 행정통합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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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일극체제 극복하려면
인재 모이고 민주적 절차 필요
공공서비스 악화 부작용 없게
속도전 대신 정밀하게 설계를

최근 광주·전남, 대전·충남, 대구·경북 등에서 시·도 행정통합 바람이 거세다. 이재명 대통령이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 국가 균형발전의 한 방편으로 광역자치단체 간 통합을 제시하고 정부가 연간 5조원씩 최대 20조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다. 가속화하는 청년 유출과 악화일로의 지역경제 앞에서 몸집을 키워 자생력·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시·도의 몸부림은 분명 타당한 생존전략이다. 국가 성장엔진을 수도권 1기통 대신 ‘5극 3특’ 8기통으로 바꿔 달면 한정된 재화·자원의 효율 극대화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논의는 통합만 하면 지역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장밋빛 환상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선을 긋고 간판을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분명 도시의 결합은 혁신과 생산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혁신은 “지식(인재)의 전파(소통·결합)를 가속화”하면서 이뤄지고, 주민들 목소리를 외면한 독단적 행정이나 시설 위주의 인프라 투자는 도시의 생산성을 갉아먹는다.

송민섭 사회2부장
송민섭 사회2부장

‘인적 자본의 집적’과 ‘민주적 거버넌스’가 전제되지 않은 통합 실패 사례는 많다. 일본의 ‘헤이세이 대합병’도 그랬다. 일본 정부는 헤이세이 시대(1999∼2010년) ‘규모의 경제’와 ‘행정 효율화’를 내걸고 기초단체 격인 시정촌(市町村)을 3232개에서 1727개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그러나 합병 성적표는 참담하다. 대다수 시정촌 인구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하수도 건설 지출 예산은 통합 전보다 13% 줄었고 하천 오염 지표(BOD)는 5.4∼5.5% 악화했다. 통합 이후 공공서비스 질은 떨어지고 행정관리 사각지대는 넓어진 것이다.

창원·마산·진해가 합쳐진 통합창원시 상황도 엇비슷하다. 2011년 110만명에 달했던 인구는 2024년 99만407명으로 100만명선이 무너졌다. 재정자립도는 48.0%에서 28.4%로 쪼그라들었고 채무는 1826억원에서 3656억원으로 두 배 늘었다.

통합에 따른 행정비용은 재정 인센티브를 상회했다. 통합창원시는 중앙정부로부터 자율통합 인센티브로 1900억원 정도를 받았는데 행정비용은 도로 표지판 교체 비용 등 57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전해진다.

균질한 공공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점도 행정통합의 부작용 중 하나다. 일본 지방자치학자 무라마쓰 미치오 교수에 따르면 시·도가 합쳐진 통합특별시의 행정서비스는 효율성을 명목으로 중심부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통합시 공무원들은 숫자로 표시되는 효율성에 매몰되기 쉽고, 인구가 적은 외곽 지역의 보건소, 치안센터 등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통폐합의 대상이 된다. 동일한 세금을 내면서도 사는 곳이 중심지에서 멀다는 이유로 기초적인 행정 서비스로부터 소외된다면 그것을 어찌 ‘통합의 성과’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시·도지사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통합만 하면 “인공지능 등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희망과 기회가 넘치는 특별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거대 지자체 내에서 발생할 소외 지역의 상대적 차별에 대한 구체적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몸집을 키워 수도권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 내부 약자를 잡아먹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일극 체제를 지역 내에 복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행정통합이 1기통 엔진을 5기통으로 바꾸는 국가 성장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엔진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차에 탄 주민들이 목적지에 동의하느냐는 점이다. 지금처럼 20조원 등 ‘판돈’에 눈이 멀어 주민투표조차 생략하려는 시도는 민주적 정당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행위다. 주민 동의 없는 통합은 ‘모래 위의 성’과 같다. 숫자의 유혹과 치적 쌓기에서 벗어나 지역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보듬을 수 있는 정밀한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통합특별시가 진정한 혁신의 요람이자 상생의 터전이 될 수 있다.